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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여름의 판타지아, 누군가의 여름 조각들 1. 악상이 떠오르는 대로 흥얼거리는 멜로디 같은 일본 지방 소도시 고조. 영화감독인 태훈은 이곳에서 새로운 영화를 만들기 위해 취재차 이곳으로 왔다. 이곳에 살고 있는, 일하고 있는 사람들과 인터뷰하며, 사람들은 고조와 관련된 기억을 꺼낸다. 더운 여름날, 걷고 인터뷰하고 대화하고 사진을 찍는다. 고조는 조용한 곳이다. 수십 년 전에 사람들은 도시로 많이 떠났고, 이곳에 남은 사람들은 때로 활발했던 그때의 고조를 그리워하기도 한다. 인터뷰 대상은 공무원, 동네에 오래 살았던 주민, 카페 사장님, 할머니, 어머니를 돌보는 중년의 남성과 같은 평범한 사람들이다.   이 영화는 어떻게 흘러가게 될까. 한여름의 눈부신 색채가 빠진, 흑백 화면으로 진행이 된다. 그럼에도 뜨거운 햇살과 선선한 새벽 공기, 카페나.. 2024. 6. 11.
소리도 없이, 소란도 없이 1. 이상한 것들의 자연스러운 조합  이상하다. 이상한 점이 한둘이 아니다. 그런데 그 이상한 것들의 조합이 자연스럽고, 일상적이다. 어색하지 않고, 조화롭다. 맥시멀리스트의 방을 보는 것 같았다. 그 방에서 이것저것 살펴보며 잘 정돈된 알록달록함에 묘하게 시선을 빼앗긴 느낌이었다.   기괴하고, 잔혹하다. 누군가의 죽음에 대한 감정 없이, 사무적으로 일을 처리하는 모습이 여느 직업인 같았다.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직업이지만, 굳이 말할 필요가 있을까. 작업 요청을 하는 쪽은 굳이 군말 없이 시키는 대로 일을 처리하는 모습에 번거로운 일을 줄일 수 있고, 보수도 넉넉히 주니까 상부상조가 아닐까. 수요가 있으면 공급은 생기기 마련이니까.   성실은 현대 사회의 덕목이다. 성실과 노력으로 가난을 벗어날 .. 2024. 6. 8.
퓨리오사: 매드맥스 사가, 나의 땅으로 돌아가기 위해 1. 풍요의 땅에서 움튼 분노의 씨앗 대서사의 시작. 사과 하나로 이야기는 시작된다. 퓨리오사는 녹색의 땅에서 자라났다. 문명이 사라지고, 세상은 황폐해진 가운데 녹색의 땅이라는 존재는 귀한 장소였다. 먹고 마실 것이 있는, 평화와 공존이 가능한 세상이었다. 그 땅을 탐내는 자들은 호시탐탐 그곳을 기웃거렸을 것이다. 그리고, 퓨리오사는 그곳에서 점점 멀어지게 된다.   풍요로운 땅을 지키기 위해 사람들은 강해져야만 했을 것이다. 잊을만하면 눈독을 들이는 이들로 인해, 평화라는 단어는 오래가지 못했을 것이다. 누군가가 위험에 빠지게 되면, 자원을 나눌 머릿수가 하나 제외되는 것이 아닌 이 험한 세상을 살아가는 동료를 잃는 것처럼 구하고자 했을 것이 분명하다. 그래서 더 소중하다. 자원은 나눌수록 고갈이 되.. 2024. 6. 6.
퍼펙트 케어,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1. 다른 죽음을 기다리는 사람들 긴장감을 늦출 수 없는 속도감 있는 전개, 배경음악, 캐릭터 설정, 갈등이 심화되는 방식이 매력적이었다. 은퇴한 노인들의 건강과 재산을 관리하는 기업에 대한 소재는 자칫 잘못하면 지루해질 수도 있기에, 잘 풀어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나에게는 말라의 동기가 이해되지 않아 설득되지 않은 점은 아쉬웠다.   인간의 욕망에 불을 붙이고, 아름다운 노력의 결실로 포장하는 식의 지극히 미국적인 해석은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영화 '더 울프 오브 워스트리트'라는 영화가 떠올랐다. 뛰어난 사업수완으로 막대한 부를 거느리지만, 그 가속도만큼 타락의 속도도 가파른 점까지 전부.   그래서, '그 여자는 행복했다고?'라고 질문을 던지려는 순간, 영화의 초반에 나왔던 요양원에 어머니를 보.. 2024. 6.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