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퓨리오사: 매드맥스 사가, 나의 땅으로 돌아가기 위해

by easyant 2024. 6.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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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퓨리오사: 매드맥스 사가>

1. 풍요의 땅에서 움튼 분노의 씨앗

 대서사의 시작. 사과 하나로 이야기는 시작된다. 퓨리오사는 녹색의 땅에서 자라났다. 문명이 사라지고, 세상은 황폐해진 가운데 녹색의 땅이라는 존재는 귀한 장소였다. 먹고 마실 것이 있는, 평화와 공존이 가능한 세상이었다. 그 땅을 탐내는 자들은 호시탐탐 그곳을 기웃거렸을 것이다. 그리고, 퓨리오사는 그곳에서 점점 멀어지게 된다. 

 풍요로운 땅을 지키기 위해 사람들은 강해져야만 했을 것이다. 잊을만하면 눈독을 들이는 이들로 인해, 평화라는 단어는 오래가지 못했을 것이다. 누군가가 위험에 빠지게 되면, 자원을 나눌 머릿수가 하나 제외되는 것이 아닌 이 험한 세상을 살아가는 동료를 잃는 것처럼 구하고자 했을 것이 분명하다. 그래서 더 소중하다. 자원은 나눌수록 고갈이 되고, 권력을 가진 자가 독점하게 될 것이다. 일찍이 그래서는 공존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이 땅을 지키는 사람들은 절실하게 깨닫고 행동에 옮겼을 것이다. 


2. 모두 빼앗긴 채, 살아가는 이유 단 하나

 퓨리오사는 자신의 생존이 걸린 상황에서도 바이커 군단에 녹색의 땅에 대한 힌트를 주지 않는다. 나의 생존이 걸린 문제로, 공동체를 위험에 빠뜨려서는 안 된다. 고향, 가족 그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만 퓨리오사는 삶에 대한 의지가 굳어진다. 아이의 몸으로 세상에 내던져졌지만, 반드시 고향으로 돌아갈 미래를 알고 있기에 더 강해지려고 한다. 

 여느 영웅담에는 반드시 조력자가 등장한다. 퓨리오사에게는 조력자가 없다. 대신 처절하고, 고통스러운 인내와 삶에 대한 의지만이 남아있을 뿐이다. 의지에 불을 당기는 것은 다름 아닌 분노다. 자신을 구하려다 목숨을 잃은 엄마, 그의 죽음을 대하는 바이크 부대의 태도, 생존 불안에 시달리며 폭력을 생산해 내는 여러 사람까지. 쇠를 담금질해 두들기는 것처럼, 더 많은 시련을 겪을수록 더 단단해지고 만다. 

 어둠 속에서 빛나는 별은 희망의 조각 같다. 터널의 끝에 다다르면, 새로운 풍경이 나타나기를 기대하는 것 같이. 하지만, 밤은 아득하고 검기만 했다. 퓨리오사는 시간이 흐를수록 스스로가 이 세상에 사라지게 되면 그래서 어머니들이 있는 땅으로 돌아가지 못할 것이 두렵다. 그 힘이 원동력이 된다. 사라져 간 사람들을 그리워하지 않는다. 퓨리오사에게 사라지고 잊힌 사람들이란 이 세상에서 폭력에 동조하며, 생명을 가볍게 여기는 이들에 불과하다. 그리고 이 세상 그 누구도 한 존재의 사라짐에 슬퍼하지 않는다. 


영화 <퓨리오사: 매드맥스 사가>

3. 분노와 증오가 만들어낸 것

 인생 전체가 분노와 증오, 복수로 가득하다. 이 사무친 감정을 해결할 방법은 한 가지뿐인 것 같다. 이 모든 일들의 시작인 폭군 디멘투스의 죽음이다. 퓨리오사는 복수라는 감정으로 물들어가면서, 더 강해졌지만 디멘투스는 과거와 달리 힘이 빠진 모습이다. 사막의 자원을 인질 삼아 인지도를 얻고, 권력을 얻은 그는 평생 취해 살아가고 있었다. 경쟁, 폭력, 생존의 게임은 멈추지 않았다. 

 퓨리오사는 부러지지 않고 강해져서 한 존재를 무너뜨릴 수 있을 만큼의 힘이 생겼다. 그 모습은 마치 악을 없애기 위해, 그 심연을 들여다보다가 자신이 바라보는 악에 물들지 않았을까. 퓨리오사와 디멘투스는 가족을 잃은 것부터 그 울분까지 닮아 보였다. 연민의 감정은 없다. 그는 폭력과 전쟁으로 가족을 잃었지만, 그 울분을 폭력과 전쟁을 사라지게 하는 데 쓰지 않았다. 살아남기 위해 이 세상에 존재했던 모든 것들을 폭력으로 다스리려 했다. 그가 진정 가족을 사랑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자기 손으로 누군가의 세상을 파괴하면서까지.

 디멘투스의 서사는 여기까지. 한 사람의 죽음은 세계 하나가 사라지는 것과도 같다고 한다. 안타깝게도 그의 죽음으로 다른 이의 세상이 무너지지는 않았다. 쓸쓸하고, 외롭고, 공기보다 가벼운 죽음이었다. 아무도 그를 기억하지 못할 것이다. 또 다른 형태의 폭군이 그가 있었던 세상을 지배하려 들 테니까. 악의 빈자리는 책임감 없이 욕망에 가득 찬 자가 차지하려 들 테니까.

 퓨리오사는 디멘투스와 다를 것이다. 퓨리오사를 기억해 주는 사람들이 있고, 돌아갈 곳이 있다. 그곳으로 혼자 도망가지는 않을 것이다. 인간 취급을 받지 못하는 존재들과 함께 거친 사막을 다시 달릴 것이다. 그 여정에서 또다시 살아남아야 자신의 땅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평화롭지 못한 이 영화에서 오히려 희망을 발견하게 된다. 내가 살고 있는 세상이 폭력적이고 고통스럽다면, 그들과 똑같은 모습으로 약자에게 주먹을 휘두르는 것은 오히려 세상에 불행을 싹트게 만드는 것이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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