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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도 없이, 소란도 없이

by easyant 2024. 6.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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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소리도 없이>

1. 이상한 것들의 자연스러운 조합 

 이상하다. 이상한 점이 한둘이 아니다. 그런데 그 이상한 것들의 조합이 자연스럽고, 일상적이다. 어색하지 않고, 조화롭다. 맥시멀리스트의 방을 보는 것 같았다. 그 방에서 이것저것 살펴보며 잘 정돈된 알록달록함에 묘하게 시선을 빼앗긴 느낌이었다. 

 기괴하고, 잔혹하다. 누군가의 죽음에 대한 감정 없이, 사무적으로 일을 처리하는 모습이 여느 직업인 같았다.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직업이지만, 굳이 말할 필요가 있을까. 작업 요청을 하는 쪽은 굳이 군말 없이 시키는 대로 일을 처리하는 모습에 번거로운 일을 줄일 수 있고, 보수도 넉넉히 주니까 상부상조가 아닐까. 수요가 있으면 공급은 생기기 마련이니까. 

 성실은 현대 사회의 덕목이다. 성실과 노력으로 가난을 벗어날 수 있다. 하지만, 과연 그게 전부일까. 태인과 창복은 누구보다 일을 진심으로 대하고, 열심이며, 심지어 성실하다. 그럼에도 그들은 가난하며, 노동으로 그들의 생활로부터 벗어날 수 있을 거라는 희망도 보이지 않는다. 다른 일을 선택하기보다는, 이 일을 평생이고 할 수 있을 것만 같은 묵묵함. 그곳으로부터 이야기는 시작된다. 


2. 성실하게 죄를 짓는 사람들

 태인과 창복은 성실하게 사는 이 시대의 일꾼이다. 묵묵하게, 시키는 일을 하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그들은 그들이 하는 일에 대한 죄책감이 없다. 보수가 따르고, 그에 상응하는 노동을 제공할 뿐이다. 그들이 노를 젓고 있는 배가 고깃배인지, 해적선인지 의문을 가지지 않는다. 아니다. 해적선임은 분명하다. 

 하지만, 그들의 일은 그들에게 선이다. 알을 깨고 나온 오리가 처음 본 존재를 엄마라고 인식하는 것처럼, 그들은 그들의 삶을 지탱하고 있는 일이 그들의 의미라고 인식하는 듯하다. 성실은 배신하지 않는다. 아니다. 해적선에 탄 그들의 성실성은 언제 어디에서 배신당해도 그리 놀라운 일은 아니다. 악은 목적을 위해 사람을 물건처럼 이용하고, 일회용품처럼 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믿음이란 나의 이익에 따라 저울의 무게가 달라지기도 하니까. 


영화 <소리도 없이>

3. 당연한 것들을 비틀어 내는

 영화의 장면은 눈에 보이는 모든 것들을, 들리는 모든 것들을 의심하게 만든다. 그리고, 당연한 것들을 비틀어 버린다. 놀라운 지점이었다. 말투는 상냥하나, 아이를 매매하는 일을 하는 사람들과 음흉하고 음침한 눈빛을 하고 있지만, 선량한 마음으로 아이를 돕고자 했던 경찰관. 자신이 고의로 저지른 일이 아닌 일에는 벌벌 떨며 죄책감을 가지는 사람, 시신의 주위를 아무렇지 않게 바라보는 아이들, 범죄를 일상적인 언어로 표현하며 살아가는 이들. 

 정상과 비정상. 순수와 잔혹. 선과 악. 구분하기 어려운 이 경계의 것들을 케이크를 조각 내듯이 표현했다. 편견과 오해가 마음에 드리우고, 화면에 진실이 드러나는 순간 무너져 버린다. 어쩔 수 없이 보이는 그대로 믿어버리고 마는구나. 어쩔 수 없이 보이는 대로 믿어버리게 했구나. 

 아이는 납치되었고, 스톡홀롬 신드롬처럼 납치범에게 동조하고 잘 지내는 것으로 보였다. 어른들의 세계를 이미 알아버린 걸까. 생존의 기술이었을 것이다. 이곳에서 벗어나면 더 위험한 곳으로 가게 될까 봐 작동된 버튼이었을 것이다. 마침내 일상 속으로 도망치는 데 성공한 아이는 범인을 지목한다. 그 너머에 더한 사람들이 있고, 잔인한 사람들이 있지만 자신의 생존을 책임지기도 했던 그 사람을 지목한다. 서늘하다. 아이의 순수함으로 범죄를 숨겨주길 바랐던 마음이 오싹해졌다. 나도 모르게 그 해적선에 올라타고 있었다. 

 아이를 납치하긴 했지만, 아이와 보냈던 시간이 행복해 보였다는 이유만으로 나는 범죄에 동조하고 있었다. 심지어는 범죄의 서사를 보고 느끼며 공감까지 했다. 그렇다고 그동안 저질렀던 일들이 무효가 된다는 것은 아님에도 불구하고 나는, 가벼이 그렇게 했다는 사실이 부끄러웠다. 

 신기하고, 이상한, 일상적이지만 신비로운 분위기. 여름에 잘 어울리는 분위기의 영화였다. 음악이 만들어내는 분위기가 좋았다. 다시 보고 싶은데, 다시 보는 데 시간이 조금 걸릴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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