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그들만의 비밀
같은 장소로, 같은 날에 이사를 온 그들은 이 이야기 속의 주인공이 본인들이 될 것이라 예상하지 못했다. 그저 일상의 반복을 감내하면서 지루함과 때로 찾아오는 행복에 순응했을 것이다. 이 평온함은 오래가지 않는다. 차우의 넥타이는 첸 부인의 남편의 넥타이와 같았고, 첸 부인의 가방은 치우의 아내 것과 같았다. 비밀은 누군가가 알게 된 이상, 밝혀지거나 숨겨지는 일만 남았다. 만약 비밀이 밝혀졌다면, 그들은 주인공이 아닌 주변인으로 남았을 것이다. 비밀은 숨겨졌다. 그리고 그들의 관계는 서서히 깊어진다. 비밀을 쥐고 있는 이, 즉 타인은 모르는 정보를 더 많이 가진 사람은 관계에 있어 우위에 있게 된다. 그들은 각자의 부부생활로부터 우위에 올라선 것으로 보인다. 차우의 눈빛과 첸 부인의 목소리, 곳곳의 붉은색 장치들은 외줄 타기처럼 아슬아슬하다. 각자의 부부생활을 끊어내지 않은 채, 높은 곳에서 떨어지지 않으려 애쓰는 모습이 위태롭다. 그 위태로움 속에서 배우자의 외도를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 아닌, 본인도 모르게 일어나는 하나의 사건으로 인식하게 된다. 절대 있을 수 없는 감정은 존재할 수 없다. 그 휘몰아치는 감정 속에서 내린 선택이 존재할 뿐이다.
2. 비밀은 어딘가에, 누군가의 마음속에 있다.
영화의 분위기는 인물과 인물 사이에 떠다니는 먼지마저도 그 존재 이유가 있는 것처럼 보인다. 화려하지만 어쩐지 불안해 보이는 장면들과 음악은 깊이를 만들어 낸다. 관계를 아슬아슬하게 지탱하면서 그들의 눈빛만으로 공간과 분위기를 채우는 느낌을 준다. 그들의 관계를 알게 된 관객으로 하여금 우위에 서서 관찰하게 만든다. 그들은 관객에게 쉽게 주도권을 넘겨주지 않는다. 관찰자에게 '당신이라면 이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가?'와 같은 질문을 남긴다. 나도 모르게 서서히 스며드는 일이라면 어쩔 수 없을 것이라는 위태로운 생각을 한다. 차우는 캄보디아의 사원에 가서 구멍이 뚫린 벽에 대고 말한다. 그 내용은 알 수 없다. 하지만, 그 내용이 첸 부인이 중심이라는 것은 짐작할 수 있다. 진흙으로 그 구멍을 막고 돌아선다. 캄보디아의 이 황량한 사원도 예전에는 화려하고 번성하던 시절이 있었을 것이다. 시간이 아주 오래 지난 현재의 그곳은, 수풀로 뒤덮인 일부가 파손되었다. 번영하고, 웅장했던 그 시절은 먼지와 이끼로 뒤덮여 버렸다. 그저 추측할 뿐이다. 먼 과거에는 이와는 달리 반짝거렸을 것이라고 말이다. 시간이 지난 지금은 그저 관광명소로 많은 사람들이 기웃거리며, 그곳에 관련된 이야기를 고개를 끄덕이며 경청하고는 돌아서서 잊어버릴 것이다. 행복했던 사랑도, 번영했던 한 시대도, 어떤 이의 감정도 전부 다 영원한 것은 아니다. 영원을 맹세할 만큼의 감정만 남아있을 것이다. 영원조차도 맹세하지 못할 비밀스러운 관계를 응원할 사람은 없다. 누군가의 응원을 바라면서 관계를 유지한 것은 아니지만, 그들은 누구보다도 충실하게 서로의 빈 곳을 채워나갔다.
3. 사랑의 역사
역사의 재로 덮여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은, 자세히 들여다보고 관찰하고 추측하지 않으면 의미가 사라진다. 사랑도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아무리 화려하고 불꽃같은 사랑도 식어버리고, 재로 남겨질 것이다.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할 사랑이라면, 그때의 아름다움을 누군가는 기억해야 할 것이다. 반추하면서, 마음속에 다시 새길 것이다. 그들은 분명 잘못된 만남이었지만, 분명히 사랑을 했고 공감했고, 꿈을 나누었다. 몇 년이 지난 뒤에 그 행복을 함께 느낄 수 없는 사이였다. 그저 서로를 그리워하고, 생각할 수밖에 없는 지나간 추억으로 남았다. 그렇다면 그 시절로 돌아갈 수 없음을 한탄하며 아름다웠던 기억을 간직하면서 현재를 살아가는 것만이 살아간다는 그 이유 자체가 될 수 있을지 질문을 한다. 구멍이 뚫린 벽에 대고 말하는 행위로 인해, 비밀은 바람을 타고 사라져 버렸다. 바람을 타고 새어나간 말은 사랑한다는 말이었을지 궁금하다. 사랑을 잘 모르겠지만, 상대방이 가엾고 안쓰럽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사랑이 오래 유지가 된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서로의 슬픔을 가장 먼저 알아챈 각자가 어쩌면 상대방에게서 본인의 슬픔을 목격하고, 그 슬픔을 사랑했을 것이다. 사랑이 이루어지지 않아서 더욱 아름다운 이야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