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한(恨)으로부터 시작되는 이야기
'한'은 우리나라 정서 중 외국어로 표현하기 어려운 단어이다. 한국인들은 이 감정을 설명하는 것보다 표현하는 데 중점을 둔다. 전래동화나 시와 같은 문학작품에서, 음악이나 속담으로 이를 표현하기도 한다. 전래동화에서는 억울하게 죽임을 당한 이들은 죽어서 산 사람에게 나타나 자신의 한을 풀어달라 하고, 속담에서는 한을 품으면 오뉴월에도 서리가 내린다고 말한다. 한은 시공을 초월하여, 현실 세계에도 그 기운이 전달된다. 그래서, 우리나라에서는 예전부터 굿이나 묘를 이장하는 형태로 한을 달래려 한다. 현실 세계에 한이라는 기운은 가족의 건강을 해치고, 승진을 가로막고, 정서적으로 악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아무리 노력해도 해결이 되지 않는 이 문제를 한을 푼다는 개념으로 접근한다.
파묘는 대물림되고 있는 기이한 병으로 의뢰를 받은 무당 하림과 봉길의 비행기 장면으로 시작한다. 후손들의 공포와 불안의 근원은 조상이 묻힌 묫자리이다. 파내려고 시도하지도, 시도하려고 해서도 안 되는 묘한 기운의 그 자리는 마치 오뉴월의 서리처럼 많은 사람들을 알 수 없는 죽음으로 이끈다. 어떤 모습으로 땅에 묻히게 되었기에, 어떤 비밀을 품고 있었기에 후손들에게 앙갚음하는 것인지 궁금하다. 조상은 후손들의 평안과 안녕이 아닌 자신의 안위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음이 드러난다. 어쩌면 죽음도 그의 권세와 영광을 막지 못하리라 생각했다. 그리고 조상이 살아서 권세를 누렸던 그 시대를 점령한 이들 또한 마찬가지였다.
한을 맺히게 만든 존재와 한을 푸는 자는 대립하여 나타난다. 한을 맺히게 만든 존재는 살아있는 존재보다 물리적으로 강하게 느껴진다. 산 사람과 대적해서 살아남을 수 있을 만큼의 인물이 땅속에 깊게 묻혀 있었다. 아마 그 존재는 살아있는 자들에게 원수를 갚기 위해 땅의 깊은 곳을 차지했을 것이다. 칼을 휘두르며, 한을 풀려 다가오는 존재들을 막음으로써 가능하게 했다.
2. 한을 풀어내는 사람들
무당인 화림과 봉길은 거액의 수익금으로 파묘를 진행하려 하지만, 실제 그 땅의 기운은 불길하다. 만류하던 상덕은 화림의 설득으로 결국 일을 진행한다. 복잡한 의미의 한을 엉킨 실로 비유한다면, 가장 쉬운 해결책은 칼이나 가위 같은 것들로 잘라내는 것이다. 일본이 원망과 원한을 극복하는 방법은 칼이다. 죽음으로써 어쩌면 간단하게 이를 해결하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한을 푼다'라고 표현한다. 해결이 중요한 것이 아닌, 해결 방법이 중요한 것이다. 화림과 봉길은 무당으로서 생과 사의 중간에 위치함으로써 이를 해결하고자 한다. 상덕은 무사히 묘를 파고 이장함으로써, 그리고 장의사인 영근은 현실 세계 주변인들의 도움을 받기도 한다. 이 네 명의 인물들의 관계는 상호의존적으로 나타난다. 그들이 가진 목적과 그 방향성은 이야기의 처음과 중간, 마지막에 이르기까지 동일하다. 큰돈이 걸린 일을 맡고, 태풍의 눈으로 들어가게 되면서 한을 풀어내기까지 멈출 수 있는 계기가 있음에도 그들은 함께한다. 자칫 신파적으로 풀어낼 수 있는 인물들의 관계를 동료와 느슨하게 이어진 가족으로 해석한 점이 독특한 점이다.
3. 결국 산 사람들이 살아가는 이야기
한을 맺히게 만든 이들은 흩어져버리고, 한을 풀어내는 사람들은 느슨한 가족이 되었다. 한을 풀어내는 과정은 개인적인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것이었고, 결국 살아있는 이들을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들은 다시 개인으로 돌아가 산 사람들을 마주하며 살아간다. 그리고, 대물림되는 병에서 갓난아기는 살아남는다. 한을 가진 혼을 품은 작은 몸이었으나, 아마 이 아기는 다른 방식으로 살아남을 것이다. 한을 가진 혼에 이루지 못한 꿈은 권세와 부귀를 쥐고 있는 것이었기에 아기의 생존이 더 의미 있다. 개봉 후, 많은 이슈와 해석을 양산하는 이야기로 관객들을 사로잡은 이 영화는, 한국적인 오컬트 장르의 가능성을 돋보이게 해 준 작품으로서 의미가 있다. 영화를 본 사람들은 장르물 마니아에 국한된 것이 아닌 점이 독특한 점이다. 장르만 남게 된 영화보다는, 이야기가 남는 영화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