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불안하고 신경질적인
배경음부터 심상치 않다. 마틴이 나오는 장면마다, 불안하고 신경질적인 효과음이 긴장감을 채웠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영화에서 마틴, 아내 안나, 첫째 딸 킴, 둘째 아들 밥은 이름이 생각나는 한편, 정작 사건의 주인공인 의사는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다. 그의 이름은 중요하지 않다. 그의 이름보다 중요한 것은 그가 한 행동과 그로 인한 비극의 시작이다. 영화의 주된 핵심은 저주, 복수, 대가를 치르는 일종의 의식이다. 영화가 시작할 때부터 궁금한 점들이 많았다. 저 중년 남자 의사와 십 대 소년의 관계는 무엇이길래 불안하고 초조해 보이는지 말이다. 아들이라기엔 애정이 없고, 성적인 관계라기엔 욕망이 보이지 않았다. 도대체 이들은 어떤 사이이길래, 비싼 시계를 소년에게 사주고 자기 집에 이 아이를 초대하는 것인지 궁금했다. 알고 보니, 마틴의 아버지는 의사에게 수술받고 죽었다. 음주 수술의 의혹이 있었고, 그것은 사실이었다. 건강하던 마틴의 아버지는 어느 순간 수술을 받고 나서 죽었다. 마틴의 의도가 의사와의 대화 속에서 무신경하게 드러나는 순간, 마틴에게 시계를 주고, 심장 검사를 도와준 의사가 자신의 죄책감을 덮기 위해 환자의 아들에게 그리 대우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그는 가족들의 환심을 사고 가까워졌다. 그렇게 그의 가족들을 망가뜨리기 시작했다. 마틴의 복수는 마치 부두 인형에 주술을 건 것과도 같이 의뭉스럽다. 자신에게 뉘우침과 용서를 구하라는 의도도 없이, 긴장감을 고조시킨다. 마틴의 능력은 무엇이길래 의사의 가족을 차례대로 하반신을 마비시키고, 눈에 피가 나게 하고, 그다음 죽게 만드는 것인지 궁금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숨통을 조이는 듯이 답답하다. '복수는 나의 것'이라는 박찬욱 감독의 영화가 있다. 아주 오래전에 봤던 영화라 기억은 잘 안 나지만 복수하는 과정이 처절했다는 느낌은 남아있다. 통쾌하지 않았다. 복수는 비린내 나고, 처절하고, 손끝엔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
2. 배신과 원망, 그리고 복수의 과정
안나가 마틴의 집으로 가서 얘기를 나누는 장면이 기억에 오래 남는다. 마틴이 스파게티를 포크로 집에 빙글빙글 돌려 우걱우걱 먹으면서 하는 말은 배신감으로 해석한다. 엄마가 마틴이 스파게티를 먹는 모습을 보며, 네 아빠랑 스파게티를 먹은 방법이 비슷하다고 말했다. 알고 보니 모든 사람이 스파게티를 그렇게 먹고, 그 모습은 별로 특별하지 않다는 것이다. 엄마가 사람들이 스파게티를 먹는 모습을 볼 때마다 자기 남편을 생각한 것은 아닌 것 같고, 마틴이 아빠와 닮은 점이 세상에 단 하나인 아빠와 나만의 것이 아니라는 사실에 화가 난 것도 아닌 것 같다. 고작 어머니가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에서 공통점이라고 찾아낸 것이 남들 다 똑같이 하는 스파게티 먹는 모습이라는 게 화가 난 것으로 보인다. 어느 순간에는 엄마가 의사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고, 저녁에 영화를 둘이 함께 보게 내버려 둔다. 마틴의 엄마가 의사를 유혹하려고 한다는 점도 알고 있었다. 마틴은 아버지의 죽음이 세상 무엇보다 슬프다. 아버지의 죽음 때문에 의사가 원망스럽고, 내 가족이 무너진 만큼 그의 가족이 무너지기를 바란다. 하지만 어머니는 아버지가 죽음을 앞두고도, 의사의 손만 쳐다보는 사람이었다니 배신과 원망의 감정이 든다. 마틴은 아버지의 상실에 대한 충격보다, 자신과 슬픔을 나눠지어야 하는 어머니에 대한 배신감이 더 큰 것이라 생각하는 것 같다. 의사의 가족은 아들 밥의 눈에서 피가 나기 시작하면서 비극은 정점으로 치닫는다. 러시안룰렛처럼 돌고 돌아 얼굴에 면포를 덮어 총을 쏜다. 이 비극의 제물을 정하는 일이다. 자식들의 학교에 찾아가 아이들의 학교생활을 물어보고, 선생님께 한 명을 선택하도록 한다. 어려운 일이다. 사실 부모라면 선택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부모라면, 더군다나 비극의 원인이 자신인 경우에는, 자신의 목숨을 끊어 가족들을 지키고 싶어 하는 게 인지상정일 것이라 생각하는데, 아무래도 한국적인 사고방식인 것 같다. 아니면 이 의사는, 자기 눈으로 이 비극의 끝을 보고 싶었나 보다. 그래서, 본인은 비극이라는 태풍의 중심에 위치하기로 한 것이다.
3. 비극의 대가
안나가 남편의 음주 수술에 대한 증거를 찾기 위해 동료 의사를 찾아가 했던 수치스러운 일도 이 비극의 대가였다. 마치 이 정도 무게의 진실을 알기 위해서는 이 정도의 무게쯤이야 견뎌야 하는 것이라 말하는 것 같다. 사실이건 아니건 간에, 마틴에게 찾아가서 들었던 남편과 마틴 어머니의 외도 이야기 또한 대가로 충분했다. 모든 비극의 시작은 그 의사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는 태풍의 눈처럼 본인은 고요하지만 자기 가족을 나락으로 떨어뜨리고 있었다. 마틴의 의도였을 것이다. 자기 가족이 서서히 죽어가는 것을, 건강한 당신이 지켜보기를 바랐던 것이다. 처음엔 그게 복수의 내용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당신의 가족이 어떠한 계기로 다시 이어진다고 하더라도 예전과 같을 수는 없을 거라는 게 진정한 비극이었다. 킴은 마틴을 여전히 마음에 두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아마, 자신의 마비를 풀어준 것이 이 소년이기 때문이다. 이 부분에서 성경 내용의 일부가 생각이 났다. '기어 다니는 자를 걷게 하시고, 눈먼 자를 눈 뜨게 하시는' 신이 생각이 났다. 본인을 믿지 않는 자에게 벌을 거리낌 없이 내리는 신, 인간의 모습을 한 신의 모습이 떠올랐다. 비록, 구원과 복수라는 점에서 공통분모는 더 희미해지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