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끊어질 듯 이어지는 인연
중국과 홍콩, 돈과 사랑, 추억과 미래, 사랑과 우정. 이분법적인 것들이 교차하고, 갈등을 만들어 낸다. 경계선에 있는 그들은 불안한 현실에 서로에게 의지한다. 사랑은 아니다. 우정은 더더욱 아니다. 운명이 서로를 끌어낸다.
이요는 불안정한 현실에서 안정적이고 따뜻한 눈빛의 소군에게 끌린다. 소군은 현실을 열심히 살아가는 이요에게 자극을 받으며 그에게 끌린다. 나에게서 볼 수 없는 한 부분을 보게 된 이들은 서로의 결핍을 채워나간다. 그들이 홍콩에 오게 된 목적은 꿈 때문이었다. 소군은 중국에 있는 약혼자와 경제적인 번영을 이끌던 홍콩에서 같이 살기 위해 돈을 번다. 이요는 자신이 번 돈으로 집을 사고 싶다는 꿈이 있다.
현실이 버겁기에, 미래는 더욱 아득해 보인다. 이 불안정한 현실 속에서 이요와의 육체적인 관계는 계속되고 사랑도 우정도 아닌 형태의 관계는 이어진다. 그들의 영원한 행복을 기약할 수 없을 것이라는 예감이 든다. 이 영화를 보며 많은 작품이 생각났다. 영화 '쉘부르의 우산', 영화 '라라랜드', 책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과 같은 것들이 같은 공간에 있으면서도 다른 곳을 바라보는 이들을 위한 이야기이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서로에게 현실을 견디게 하는 가장 큰 힘이 되었지만, 현실의 무게는 그보다 더 무거웠다. 고운 모래를 손에 꽉 쥐고 있지만, 손에 힘이 들어갈수록 모래는 더 빠른 속도로 손에서 빠져나가는 것처럼 말이다. 손을 펴고 나면, 먼지만큼 가벼운 모래만이 남아있다는 것을 알게 된 순간 허무해진다. 그렇게 내가 움켜쥐고자 했던 것은 무엇일까. 지나간 인연은 지나간 대로 두는 것이 맞다고 다들 말하지만, 나만큼은 아니기를 바란다. 나의 간절함은 거센 현실에서, 바람만큼 가볍다.
2. 경계에 놓인 현실을 살아가기 위해
경계에 놓인 현실을 살아가기엔 사랑은 사치 같고, 사랑하는 사람만을 보면서 살기엔 현실이 가혹하다. 각자의 현실을 선택하고, 각자의 인생에서 잘 살아가다가 마지막에 만나는 그 둘의 운명을 기다렸다. 해피엔딩을 기대했던 이유는 살아가게 만드는 힘은 운명적인 사랑이기를 바라는 마음 때문이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운명의 테두리가 얼마나 얇고 부서지기 쉬운 것인지, 사람은 어쩌다 그 안에 웅크리고 두려워하는 것인지 모르고 섣불리 상상한 것이었다.
시간은 이요와 소군에게 기회를 준다. 서로에 대한 사랑을 확인하고,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설렘을 준다. 그것은 농담과 같이 사그라든다. 시간은 기회를 주었지만, 운명은 그 기회를 빼앗아 버린다. 잘못 배송된 택배처럼, 소리 소문 없이.
요즘에 보는 작품들로부터 얻는 것은 그 작품이 끝나고 난 이후의 인물들에 대한 이야기가 아닌, 나의 이야기이다. 나는 이 작품을 경험하고 나서 어떻게 변화했는지에 대해서 보다 더 집중하게 된다. 이야기를 만들고 싶어졌다. 언제가 될지는 모르지만, 그 언젠가 이야기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이 꼭 사랑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더라도. 경계와 그 안에 살아가고 있는 이방인, 운명과 현실에 대한 이야기라면 언어가 다르더라도 다른 누군가에게 설득이 되는 과정을 영화를 보며 느꼈기 때문이다.
3. 미완의 엔딩
애절하고 절절한, 오열을 하게 만드는 장면 없이 가슴이 답답하고 슬프다. 잔잔하게 이들의 운명을 살펴보게 된다. 청춘에서 빛이 바래진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을 영화의 흐름대로 바라보게 된다. 홍콩에서 그들의 만남이 없었더라면, 그들은 각자 인연을 찾아 행복할 수 있었을까. 실패한 사랑이 실패한 인생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더 나은 사람이 될 기회를 한 번 얻을 셈 치면 된다. 만남이라는 운명이 반복되고 있다면, 각자 최악과 최선이었던 자기 모습과 그 시절을 다시 떠올리게 된다면.
내 뜻대로 반드시 이루어져야 하는 인생은 없다. 하나뿐인 답을 찾아가는 인생이 아니라, 각자 저마다의 정답을 찾아가는 그 과정이 더 가치 있는 일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미완성의 인간이 완전하기 위해 애쓰는 모습이 아름답고, 지켜야 할 것을 변함없이 지키고야 마는 인간의 모습이 안쓰럽고도 좋다. 시간이 얼마나 걸리더라도, 스스로를 믿고 현실을 살아가는 사람들을 응원한다. 이요와 소군의 만남과 헤어짐이, 그리고 재회가 먹먹했던 이유는 행복에 이르는 길목에서 방황하고, 예상치 못한 사건이 생기고, 다시 견뎌서 자신의 현실을 살아가는 모습이 보여서이지 않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