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나의 사춘기는
나의 사춘기의 감정은 잔잔했다. 사춘기라는 질풍노도의 시기가 없다 싶었고, 이상하리만치 조용히 지나갔다. 그 시기는 허공에 떠 있는 시기이기도 했다. 현실감각이 없었고, 꿈도 없었다. 나라는 존재를 어떻게 표현해야 하는지도 몰랐고, 그저 나 자신을 이해해 주기만을 바랐다. 이기적이었고, 마음속에 자기 자신만이 가득한 시기였다.
간절히 원하면 이루어진 다지만, 간절히 바라는 것도 없었다. 친구들과의 관계도 느슨한 듯 이어졌다. 멍했고, 가끔 슬펐고, 자주 귀찮았다. 좋아하는 것을 좋아하기엔 친구들과 다른 내 취향이 왠지 창피했고, 싫어하는 것을 싫어하기엔 역시나 친구들과 의견이 갈라질까 봐 눈치가 보였다.
그렇게 있는 힘껏 잡아당겨 탄력을 잃은 용수철처럼 학창 시절은 지나갔다. 어디론가 갈 수도, 무언가가 될 수도 없었던 시기가 지나갔다. 한 공간에 머물러 있었으며, 누군가 바라봐 주기를 기다리기만 한 채 불안만이 가득 찬 학창 시절이었다. 이 시기만 벗어나면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될 수 있을 것만 같은 막연함만이 설레게 했던 날이었다.
2. 통제와 예측이 불가능한 감정들
사춘기의 감정이 추가로 등장했다. 불안, 당황, 따분, 부럽.
시시각각 통제와 예측이 불가능한 감정들이다.
그중에서도 불안이는 유별나다. 가능한 모든 시나리오를 검토하고, 잘못된 행동마저도 이 모든 것은 라일리를 위한 것이라 합리화하며, 더 잘 해내고 싶은 마음을 더욱 부추긴다.
라일리의 사춘기 이전의 어린 시절을 담당했던 감정들과 불안이의 갈등은 예견된 것이었다. 감정들은 라일리를 위해 애쓰지만, 그 행복이 어떤 모습과 형태를 갖추어야 하는지 잘 알지 못한다. 행복의 모습과 형태, 모양새는 어쩌면 각 감정들이 추구하는 방향이 제각각이다. 하지만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면, 라일리가 행복하길 바라는 것이었다. 결국 감정들은 라일리의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위해, 감정들이 라일리의 자아를 컨트롤하지 않기로 한다.
기쁨이는 지금 바로 이곳에서의 행복한 추억과 기억을 붙잡으려 하고, 불안이는 일어나지 않은 가깝고도 먼 미래의 불행한 일들을 막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어쩌면 사춘기가 온다는 것은 미래의 불확실함에 불안이 커지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로 인해 기쁨은 한 걸음 물러날 수밖에 없다.
3. 감정을 일으키는 것은
스토아 철학에서 말하는 내용은 다음과 같다. 사건과 상황이 직접적으로 감정을 일으키기 보다는 사건과 상황에 대한 나의 판단이 감정을 일으킨다. 그러니, 감정을 차분하게 유지하기 위해서는 감정에 대한 판단보다는 사건과 상황에 대한 판단이 우선이어야 한다. 쉽지 않은 일일 것이다.
사춘기는 앞으로 닥쳐올 수많은 갈등과 오해가 있는 상황들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지 정하는 시기이다. 그 시기 동안 혼란스러움과 당황스러움이 정서를 지배하겠지만, 이 시기를 벗어나면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나를 사랑하고 아껴주는 사람들과, 내 감정들의 혼란스러움은 모두 나의 행복을 위해 애쓰고 있다는 사실을.
새로운 나를 만나는 일, 그런 나 자신을 마주하는 일은 낯설다. 내가 나 자신이라는 사실이 못 견딜 정도로 고통스러울 수도 있다. 나는 나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그런 나 자신을 부둥켜안고 살아가기 위해 나는 어떤 판단을 내릴 것인가. 나의 불안은 나를 해치지 않는다. 나의 불안이 왜 이렇게 불안에 사로잡혀 있는지 바라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살아남으려고, 잘 살아남으려고, 행복하게 잘 살아남으려고. 기쁨은 한발 물러나서 뒷짐을 지고 구경하는 것이 아니라, 더 나은 선택을 위해 같이 노력하는 중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