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혼란스러운 현실보다 더 혼란스러운 것
현실은 멈추기 어려운 쳇바퀴와 같다. 나의 불안과 고통을 비료 삼아 현실은 더 쑥쑥 자라나 나를 괴롭힌다. 나를 괴롭히는 것들 중, 제발 한 가지만이라도 조용하게 얌전히 있기를 기대하건만 속도 시끄러운데 세상도 시끄럽다. 가족은 더군다나 나와 가장 가까운 타인이다. 혼란스러운 나머지 자기 자신의 목소리도 듣지 못하는데, 가족들은 저마다 아우성이다. 그럴 때마다 내가 만약 어느 때에 선택을 달리했다면 지금의 혼란은 없었을까 하는 생각이다. 그 생각 속에 갇혀 있게 되면, 나의 현실은 더욱 엉망진창으로 보인다. 수많은 '만약'과 가능성들로 안 그래도 속상한 나의 마음을 더욱 아프게 만든다. 포기하지 않는다. 지금 눈앞에 있는 이 혼란만 벗어나면 괜찮아질 것이다. 몇 년 전에도 이렇게 생각했던 것 같기도, 어제도 같은 최면을 걸었던 것 같기도 하다. 모든 벽면이 세탁기인 이 공간에 있으면, 아마 네모로 생긴 외눈박이 괴물들이 규칙적인 소음을 내며 나를 바라본다. 내 몸을 내가 어찌하지 못하겠는데, 나는 내 가족뿐만 아니라 어느 순간 세상을 구해야 하는 임무가 주어졌다. 도망치고 싶지만 도망갈 수 없다. 내가 밟고, 움직이는 이 땅에서만 혼란스러운 일이 있을 줄 알았는데, 웬걸, 이 세상과 우주는 다채롭게 혼란스럽다. 멀티버스 안의 수많은 나는 이 믿을 수 없는 싸움에서 나를 구원할 능력이 있다. 이 땅에서 나는 무력하고 신경질 많은 동양인 이민자이지만, 그 능력들 덕분에 나는 새로운 기회를 얻었다. 세금 문제와 이혼, 버릇없이 구는 딸을 구하기엔 필요 없는 능력이지만 말이다. 다른 우주 속에 살고 있는 수많은 나의 모습은 나라는 존재의 수많은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어떤 순간에 무슨 선택을 했건, 어느 나라에서 태어났건, 어떤 모습으로 세상을 살아가고 있건 간에 그 수많은 '나'들은 저마다 행복하기 위해 분투하고 있다. 사랑하고, 후회하고, 기쁘고, 슬퍼하면서 말이다.
2. 혼란 속에서 진짜 나는 무엇일까
영화를 보면서 느끼는 혼란은 에블린이 느끼는 것과 별반 다를 것 없다. 왜냐하면 지금까지 봐왔던 수많은 영화와 드라마 속의 영웅과 다른 모습이기 때문이다. 동양인, 중년 여성, 이민자의 정체성을 가지고 있으며, 멀티버스에서 능력을 빌려서 싸우는 방식도 애매한 것 같다. 영웅이 등장하는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 위기를 겪고, 조력자를 만나 힘과 능력이 강해지고, 위기를 없앤 다음의 해피엔딩을 그리고 있기 때문이다. 킹스맨같이 성장하는 주인공의 모습과 정장 차림의 멋스러움도 없고, 아이언맨같이 첨단 기술이 들어간 장비와 세계를 구하는 과정에서 자기희생도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무엇보다 혼란스럽다. 에블린이 멀티버스에 사는 자신의 능력을 빌려오면서 싸우는 동안, 적들도 더 강해지고 더 잔인해지고 있다. 다채롭게 혼란스러운 세상을 구하려, 가지각색의 적들과 싸우는 동안 싸우고 있는 대상에 나의 딸인 조이가 보인다. 조금 말썽을 부리고 말을 안 듣는다 뿐이지, 조이는 여전히 에블린의 딸이다. 조이의 모습은 분노에 가득 차 있고, 그 분노로 세상을 망치려 한다. 고통뿐인 세상에서 살아가는 나와 그 고통을 불러일으킨 나의 부모님, 나의 가족, 그리고 그들이 살아가고 있는 세상을 삭제하려 하는 것이다. 그 모든 세상 속에서 에블린은 수많은 선택들의 가능성을 누리며 살아가는데, 조이의 모습은 다르다. 한 사람을 구하고 나면, 세상을 구할 수 있다. 그 이후는 에블린은 세금 문제로 골치 아파할 것이고, 남편과의 갈등, 딸과의 마찰, 가족 부양 등으로 혼란스러울 것이다. 혼란의 끝에 해피엔딩이 기다리고 있는 대신, 혼란의 끝엔 더 현실적인 혼란이 기다리고 있다. 어떠한 사건을 겪거나 경험한 사람은 이전과 다른 방식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밖에 없다. 살아있다는 것 자체가 하나의 가능성이며, 에블린이 바로 지금 여기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은 좌절만 안기는 시끄러운 세상 속에서 상대방에게 친절함을 보여주는 것이다.
3. 가장 간단하지만, 지키기 어려운 것
세상을 위험으로부터 구하기 위해서 영웅이 가져야 할 것은 힘과 능력뿐이 아니다. 스스로를 구원할 수 없는 사람을 세상을 지킬 수도, 구할 수도 없다. 설령 구해낸다 해도, 그 영광은 오래가지 않을 것이다. 세상은 여전히 나에게 못될 것이고, 그렇기에 내가 반드시 구했어야만 했나 의심이 들 정도로 엉망진창일 것이기 때문이다. 내가 소중하게 생각하는 가족, 친구, 동료를 구하기 위해 세상을 구했을 뿐이고, 내가 버티고 살아가는 이유는 바로 그들이다. 나는 외로운 사람이기 때문에 나를 구원하지 않으면, 소중한 사람들을 지킬 수 있는 힘과 능력도 쓸모가 없다. 에블린은 혼란스러운 세상에서 버티기 위해 독해졌을 것이다. 강해야만, 돈이 있어야만 살아남는 이 세상 속에서 자기 자신과 가족을 지켜야 하기 때문에 그랬을 것이다. 어쩌면 세상을 위험에 빠뜨리게 만든 건, 독하고 강하며 능력 있는 자만이 살 수 있게 만드는 세상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그런 능력이 없는 사람들을 배제하기보다, 그들의 가능성을 바라보며 조금 더 친절했더라면 세상의 모습이 달랐을 것이다. 세상을 구하는 일은 어쩌면 간단하다. 한 사람을 구하는 것이다. 사람마다 각자의 전쟁터에서 고군분투하고 있으니, 사람들을 대할 때 친절하라는 말을 남긴 한 철학자가 있었다. 이 영화 속에 표현되는 전쟁은 바로 수많은 사람들이 각자 마음속에 있는 전쟁터를 다채롭게 구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