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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프터양, 일상의 일부에서 전부가 되어버린 것

by easyant 2024. 3.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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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대체될 수 없는 나의 가족

스스로 생각하고 움직이는 기계가 등장하고 나서, 인간은 기계에게 일자리를 빼앗길 것이라는 위기를 느꼈다. 효율성을 위해 등장하기 시작한 이 존재는, 사고과정과 감정을 알고리즘으로 학습하면서 인간과 닮아가고 있다. 불편한 골짜기는 로봇이 인간과 너무 유사하게 되면, 불편함과 혐오감을 느낀다는 이론이다. 이 골짜기를 넘어 인간과 구별할 수 없을 정도로 인간처럼 만들어진 존재와 살아간다면 어떨까. 인간의 모습을 가진 존재는 친절하고, 생활에 도움을 주며, 감정적으로 상대를 대하지도 않는다. 주어진 일들을 해낼 뿐이다.
인간은 오랫동안 그들이 기르는 애완동물이나 아끼는 물건, 추억이 담긴 사물 등에 인격을 부여한다. 시에서 의인법을 사용하여 인간이 아닌 존재나 사물이 감정을 느낀다고 표현한다. 인간 중심적인 사고이지만, 우리는 인간이 아니었던 적이 없기에 이를 벗어나서 생각할 수 있는 여지가 없다. 기계는 우리가 사용하는 도구로써 충분한 역할을 한다. 이용하고, 버리고, 다시 구매한다. 물건과 함께한 시간이 길어지고, 추억이 쌓이면 우리는 그 물건을 '버린다'라고 하기보다 '헤어진다'라고 표현한다. 누군가로부터 이용당하거나 배신을 당할 때 버려진 상태라고 느끼는 것과 유사하다. 나는 그 사람에게 도구로써 어떠한 요건을 충족시키기 위해 존재했기 때문이다. 애프터양에 나오는 가족의 모습은 헤어짐에 가깝다. 양이 고장이 나고, 함께 할 시간을 연장하기 위해 수리하려 한다. 마치 가족 구성원 중 하나가 생명이 위급할 때, 인공장기를 이식하거나 기계의 도움으로 생명을 연장시키는 모습이 떠올랐다.  대체할 수 없는 소중한 존재, 가족. 양은 그들에게 그러한 존재였다.
양은 고장이 났다. 그의 몸 안에 있는 메모리 뱅크라는 저장 공간에는 알고리즘으로 작동되는 행동방식이 아닌 추억이 담겨있다. 만남과 이별, 기쁨과 슬픔, 과거와 현재가 고스란히 남아있다. 인간과 닮았지만, 나는 왜 인간이 아닌가. 인간이 될 수 없는가. 인간이 되려면 어떻게 하지. 인간이 되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그리고 양이 말하지 않은 수많은 질문들에는 외로움이 있다. 비인간이 인간스러움을 자신의 기능으로 사용하기 때문에 발생한 결과이다. 

2. 충분히 그리워할 수 있는 존재

 

양의 메모리 뱅크는 기억들로 가득하다. 가족의 구성원이 되기 전, 되고 난 이후, 그리고 고장이 나기 직전까지 담겨있다. 양이 세상을 바라보고 판단하는 방식에서 인간에게 편의를 제공하기 위한 존재로서의 양에게 감정이입이 된다. 사람은 각자 자신의 시야로 상대방을 판단한다. 우호적이거나, 적대적이라는 각자의 평가를 내리고 나서 그 판단의 결과로 사람을 대한다. 양은 판단하고 평가하지 않는다. 그저 기억이 있을 뿐이다. 그 기억의 파편들로 자신의 가족들과 친구를 완성해나간다. 어쩌면 양에게 하루는 새로운 데이터 또는 기존에 있던 데이터의 반복이었을 것이다. 정보를 저장하고, 수용하며, 적절한 행동으로 작동하는 여느 다른 안드로이드 인간과 마찬가지로 말이다. 부모는 자신의 아이의 정체성이 동양인이라는 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하기 위해 양을 데리고 온다. 역할이 주어진,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이 구분이 되어있는 전형적인 가정용 안드로이드인 것이다. 양의 부재는 단순한 불편함이면서도, 특별한 의미를 가진 존재가 이 세상에 사라졌음을 나타낸다. 비슷한 기능을 가진 안드로이드 로봇이, 양의 메모리 뱅크를 가지고 가족과 함께한다면 이 가족은 상실감을 채울 수 있을까. 마지막을 충분히 마지막답게 이별하지 못하고, 남아있는 기억들로 그를 추억한다는 것은 슬픈 일이다. 

 


3. 인간적으로 그리워한다는 것의 의미

사람은 기억의 대부분을 왜곡된 방식으로 기억한다고 한다. 정확한 기억이라는 건 사실상 없을지도 모른다. 내가 바라본 세상과 해석하는 방식으로 기억은 재구성되고 붕괴되고 재조합된다. 양의 기억 속에는 정보가 가득하다. 추억은 인간이 멋대로 해석하고 구성한 조각들이다. 나에게 좋은 추억이 다른 이에게는 나쁜 추억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미 지나간 일을 생각하고 돌이킨다. 양의 기억은 수많은 데이터이면서, 양이 바라본 세상을 내가 경험할 수 있는 장치이다. 양이 바라본 세상과 그가 어떠한 방식으로 세상을 해석했는지, 또 사람들을, 가족들을 어떻게 바라봤는지 경험할 수 있다. 그에게도 꿈, 의지, 희망 같은 것들이 있었을까. 이것들의 공통점은 모두 미래와 관련되었다는 점이다. 미래에 더 나은 존재가 되기 위한 인간은 과거를 돌이켜보고, 현실을 기꺼이 포기하기도 한다. 추구하고자 하는 것을 얻기 위해, 그는 가정용 안드로이드 인간으로서 존재를 버려야 한다. 그의 목적은 그와 생활하는 인간에게 맞춰져 있기 때문이다. 그의 기억은 그리워하는 존재들을 위한 것이다. 고장이 나거나 수명을 다해서 사라질 존재이지만, 나와 함께 했던 이들은 나를 기억해 주길 바란다는 의미일 것이라 추측한다. 남아있는 이들을 위해, 내가 당신들을 이만큼 사랑했음을 보여주기 때문에, 그의 부재가 더욱더 비어있는 것 같이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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