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사랑하라, 한 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
아빠 캘럼과 튀르키예 여행 온 열한 살짜리 아이 소피. 캘럼은 손에 깁스를 한 채 아이를 돌본다. 다들 가족과 연인과 함께 단란한데, 어색하진 않지만 비어 보인다. 아빠와 딸은 캠코더로 여행 추억을 남긴다. 소피의 부모님은 이혼했고, 현재는 엄마와 사는 상태. 아빠와 여행을 왔다. 햇빛 가득한 이곳에서 그들만의 추억을 남긴다.
캘럼은 고향을 떠난 그 어떤 곳에서도 소속감을 느끼지 못했다. 너도 크면 알게 될 거야. 그가 고향을 떠나 사는 이유는 햇빛이 없어서라고 한다. 그 햇빛은 하늘에 떠 있는 햇빛 말고도, 감정적인 따스함을 넌지시 말하는 것 같았다. 소피는 캠코더를 들면서 묻는다. 열한 살의 아빠의 생일은 어땠냐고. 그 질문에 캘럼은 표정이 어두워지고, 소피는 마음속으로만 이 장면을 기억하겠다고 약속한다.
그때는 아무도 나의 생일인 줄 몰랐고, 그 사실을 나중에 안 부모님께서는 자신을 데리고 장난감을 사주었다고 한다. 유쾌한 추억은 아니었던 것 같다. 어린 시절의 캘럼은 부모님에게 사랑을 달라고 떼쓰기보다, 부모님이 사랑을 주길 기다리던 어린아이였던 것으로 보인다. 열한 살의 소피에게서 캘럼이 보인다. 하지만 소피는 그 당시, 자신의 아빠가 어른이라고 믿었다. 자신은 영영 서른이 되지 않을 거라는 듯이 말한다. 하지만, 아빠는 서른을 이제 막 넘겼고, 여느 부모와는 다르게 부모의 역할이 어색하고 부담스럽다.
아이는 행복하기 위해 사랑을 받아야 하고, 어른은 행복하기 위해서 사랑하기로 선택한다고 한다. 캘럼의 사랑은 아이의 사랑이다. 소피로부터 사랑을 받는다.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소피에게는 사랑이 넘친다. 아마 사랑이라는 게 무엇인지도 몰랐을 텐데. 사람들에게 아빠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노래를 불러달라고 요청하는 소피의 모습은 아빠의 행복한 표정을 보기 위해 했던 행동일 것이다. 아빠의 표정은 밝지만은 않다. 자신이 주어야 할 사랑보다, 아이로부터 받는 사랑이 크다.
캘럼은 내가 사랑하는 크기만큼 상대방에게 비슷한 크기로 사랑을 받고 싶어 하는 것 같다. 그게 아마 이혼 사유가 아니었을까. 소피는 아빠에게 묻는다. 이혼한 엄마에게 왜 사랑한다고 말하느냐고. 아빠는 가족에게는 사랑을 표현하는 거라 답한다. 아이가 받는 사랑은 이 세상의 전부이며,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자신에게 의미를 준다. 캘럼은 어른이 되어도 어린 시절 때 배웠던 사랑으로 사랑을 한다. 그래서 그 사랑만으로 어른이 되었고, 이는 다른 사람을 사랑하기에 모자랐을지도 모른다.
2. 노래하라, 아무도 듣고 있지 않은 것처럼
캘럼은 멋지고, 당당한 모습을 소피에게 보여주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소피에게 실망을 주고 마는 사건이 발생한다. 소피는 사람들이 많은 곳에서 아빠와 노래를 부르려 신청한다. 아빠는 극구 사양하고, 소피는 앞으로 나가 노래를 부른다. 아빠가 말은 그렇게 했어도 자신을 위해 나와주겠지, 노래를 같이하겠지 생각했지만 끝나가도 아빠는 나오지 않았다. 자리로 돌아온 소피에게 캘럼은 노래를 배우고 싶으면 배우라고 하지만, 소피는 그럴 만한 돈도 없으면서 그런 말 하지 말라고 말한다.
아빠가 같이 무대에 서서 노래를 불렀다면, 아무도 그 노래를 듣지 않아도 상관없었을 것이다. 무대에 혼자 남겨졌을 때, 아무도 노래를 듣지 않을 거라는 생각보다, 그 '아무도'에 자신의 아빠가 있다는 사실에 혼란스러웠을 것이다.
여행은 시작부터 자연스럽지 않았다. 어느 순간 아빠는 마흔 살의 자기 자신이 그려지지 않는다고 했다. 열한 살에게 서른은 너무 먼 얘기이다.
현재의 소피는 비디오로 아빠와 자신의 여행 기록을 본다. 아마 서른 일 것이다. 소피는 비디오에 담기지 않은 아빠의 모습을 상상한다. 자신이 지금 그렇듯이, 그때의 아빠도 어른 흉내를 내는 것 같다.
소피남자아이와 키스하고, 그 이야기를 아빠에게 한다. 아빠는 소피에게 어른이 되어서 파티에 간다면, 거기에서 일어난 일들을 자신에게 얘기해 주길 바란다. 소피는 자기는 그런 어른이 되지 않을 거라고 말하지만, 아빠는 자신이 겪어온 아픈 청춘을 소피에게 투영하는 듯하다. 아빠의 어린 시절은 비밀스럽고, 속상한 일이 많았던 것 같다. 그리고 그 시간이 소피에게 스치지 않기를 바라는 것만 같다.
3. 춤추라, 아무도 바라보고 있지 않을 것처럼
캘럼은 소피와 같이 춤을 추자고 한다. 소피가 노래를 사람들 앞에서 같이 부르자 할 때는 주저했으면서, 이상한 춤을 추는 아빠에게 어리둥절함을 느낀다. 춤이라기보다는 몸부림에 가깝다. 춤추는 사람들은 각자의 춤과 감정에 빠져있다. 아무도 각자의 춤이 이상하다 하지 않는다.
캘럼은 아마 무리해서 카펫을 샀을 것이다. 소피와 함께한 기억들이 사진과 영상으로만 단편적으로 존재할까 봐. 여행이 끝나면 영영 보지 못할 사이가 될 것처럼, 카펫 가게에서 카펫을 사고 그 자리에 누워본다. 카펫과 함께 자신을 영원히 기억해 달라고 말하는 것 같다. 캘럼이 열한 살에 부모님으로부터 받은 생일 선물이 떠오른다. 아마 그 소년은 장난감 중에 가장 무난한 것을 고르지 않았을까. 소피에게는 이곳에서 살 수 있는 가장 비싼 물건을 고른 것 같다.
거짓말쟁이에, 아이를 돌보는 데 어색한, 돈도 없고, 정서는 혼란스러운 아빠와의 여행. 잔잔한 바다에 비치는 윤슬처럼 눈부시고 혼란스러운, 아름다운 여행이었다.
한 번도 사랑한 적 없는 것처럼 사랑을 하기 위해서는, 수없이 사랑을 받아본 기억이 있어야 한다. 한 번도 사랑받아 본 적 없는 것처럼 살다가도, 어느 순간 느끼게 된다. 내가 받았던 것들이 사랑이었음을 깨닫게 되는 순간이. 한 번도 사랑받지 못한 것처럼 사랑을 갈구하는 모습은 자신을 초라하게 만든다. 그리고 그 사람은 자신의 사랑을 꺼내 누군가에게 주어야 하는 순간이 온다. 캘럼과 소피의 여행이 아마 그러했을 것이라 생각한다.
소피는 사랑에 대해 질문을 하고 답을 찾는 과정에서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그들에게서 사랑의 의미를 찾고, 사랑 비슷한 것을 경험한다. 아마 아빠가 보여주는 사랑이 어떤 이상적인 모습이기를 바라는 것은 아닌 듯하다. 소피는 아빠의 잘못된 행동을 모른척하기도 했으니까. 이상적인 사랑은 이미지가 필요하다. 저렇게 사랑받고, 사랑하고 싶다는 욕망이 있어야 한다. 그런 이미지들의 나열에서 아빠를 찾는다. 아빠도 사랑을 받고 사랑을 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나 자신의 나약하고, 감정에 고통스러운 모습을 숨기고 싶어 했을 것이다. 그런 모습을 아무도 사랑해 주지 않을까 겁먹었을 것이다.
약한 본인의 모습에서 사랑받지 못함을 직감하는 순간은 고통스러운 동시에 이기적이다. 상대방이 자신을 바라보는 시야를 자기식대로 재해석하기 때문이다. 솔직하지 못한, 불안정한 청춘의 사랑. 그 순간은 뜨거웠으나, 한순간에 식기 마련이다.
여행이 끝나고 공항에서 헤어지고 난 다음의 아빠 모습을 어른이 된 소피는 상상으로 채운다. 캘럼은 어떤 마음이었을까. 소피는 더 이상 열 한살 소녀가 아니다. 캠코더에 담기지 않은, 전해지지 않은 마음들이 아려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