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왜 나는 조그마한 일에만 분개하는가
오디션을 보러 다니는 칼과 유명 인플루언서 야야 커플은 식사비로 인해 다투게 된다. 자존심이 걸린 문제라기에는 싸움은 구질구질하다. 말꼬리를 붙들고, 서로의 잘잘못을 따진다. 모델의 수입은 남자 모델일 경우, 여자 모델보다 3분의 1 가량 낮다. 그 외에 야야가 여자이기 때문에 겪는 불평등과 차별은 소득격차로 인해 흐려지고 만다.
그들은 협찬으로 크루즈 선에 탑승했다. 관심을 받기 위해 먹지도 않는 파스타를 먹는 척, 수영은 하지 않은 채 수영복을 입고 사진을 찍는다. 크루즈 선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탔다. 그들은 돈으로 모든 것이 해결되리라 믿는다. 그 믿음은 여느 종교와 다를 바가 없다.
크루즈 선의 직원들은 손님이 원하면 무엇이든 긍정적으로 답변해야 한다. 탑승객들은 크루즈 입장권을 살 때, 이들의 친절과 서비스, 노동력 전부를 구매한 셈이기 때문이다. 조그마한 일에 분개하는 그들을 잘 어르고 달래면 팁을 받는다. 이 공간에서는 모든 것이 상품이고, 교환할 수 있는 것들이다. 마음에 들지 않는 직원을 해고하고, 누텔라를 먹고 싶은 손님을 위해 헬기를 띄우는 공간. 친절과 배려는 마음에서 나오는 것이 아닌, 부유함에서 우러나온다. 부유한 이들은 아량을 베풀고, 명령한다. 명령은 상대의 복종을 암시한다.
크루즈는 작은 피라미드와 같다. 탑승객들 사이에서는 소득별로, 직원들 사이에서는 업무별로 나뉜다. 손님과 가장 자주 마주치는 얼굴들과 보이지 않는 곳에서 수고를 하는 사람들의 피라미드는 드러나지 않아 더욱 심각하다.
2. 너의 얼굴과 몸이 영원할까
선장은 크루즈를 방관한다. 이 또한 크루즈 직원 피라미드의 꼭대기에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권력과 책임이 있는 이 자리는 그만한 가치가 있음을 증명해야 한다. 안전하게 운행하는 것에 칭찬받지는 않는다. 하지만, 위험한 상황이 닥쳤을 때 그 누구보다 가장 큰 책임을 져야 하는 인물이다.
탑승객 중 하나는 크루즈의 모든 직원이 업무를 놓고, 미끄럼틀을 타자고 제안한다. 아니 명령한다. 인생은 한 번뿐이라며, 즐겨야 한다는 말을 강요한다. 피라미드의 위층에 입주한 사람들이기에 할 수 있는 가장 큰 친절이었다. 위에서 내려다보면 자신은 전지전능하며, 아래에 있는 사람들은 작고 불쌍해 보이니까.
배가 심하게 흔들린 혼란스러웠던 어둠이 지나고 나서, 맑은 하늘이 보인다. 저 너머 해적선이 보인다. 크루즈는 먹음직스럽게 생긴 만찬 장소 같다. 해적이 수류탄을 던지고, 그로 인해 배는 폭발한다.
섬에 떠밀려온 사람들은 비싸고 멋진 옷을 걸치고, 널브러져 있다. 그들의 생존 능력은 있을 리 없다. 그들이 생존할 때 필요한 건 돈으로 산 명품과 노동력이기 때문에. 인정 욕구와 과시 욕구가 그들을 지금까지 살아있게 한 원동력이었기 때문에 그들은 이대로 살아갈 수 없다.
크루즈에서 청소를 도맡아 한 애비게일 또한 살아남는다. 뛰어난 생존 능력과 카리스마로 우두머리가 된다.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물고기를 잡고, 요리하고, 그 능력으로 자신이 리더라고 선언하는 일마저도.
3. 내가 바란 그 미래는 겨우 누군가의 위층이야
애비게일과 칼은 암묵적으로 거래를 하는 관계로 변했다. 음식과 몸을 교환하는 것. 크루즈에서 그랬듯, 섬에서도 모든 것은 교환할 수 있는 것들이다. 애비게일은 평생을 겪어왔던 피라미드의 밑바닥에서 뾰족한 꼭대기로 올라간다. 그리고 가능한 모든 권력을 누린다.
겨우 노력해서 올라간 곳은, 누군가의 위층이었다. 피라미드는 견고하지 않다. 언제든 전복될 수 있다. 호모 사피엔스가 다른 종보다 생존율이 높았던 건, 다름 아닌 협력이었다고 한다. 이 섬에서는 생존이 희박할 것이다. 아무래도 모든 이들의 생존보다는 권력 유지에 배팅을 걸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