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내가 사랑하는 사람의 성공이 곧, 나의 행복
앨리의 성공을 바라보는 한때 유명 가수 잭이 있다. 앨리는 재능과 실력 모두를 갖추고 있지만, 자신감이 없다. 앨리는 그녀의 얼굴을 싫어하는 듯하다. 세상 사람들이 아직 잘 알지 못하는 앨리는, 음을 다루는 방식을 사랑하고, 그 재능을 세상에 보이고 싶었다. 인정받고 사랑받고 싶었다. 잭은 본인이 사랑하는 사람이 다른 사람들로부터 사랑을 받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앨리의 재능을 소수의 사람만 알기에는 아까웠기 때문이다.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아, 잭의 사랑보다 대중들의 사랑이 앞질러 갔다. 대중들은 앨리를 사랑하게 되었고, 그들은 그들이 듣고 싶어 하는 음악을 앨리에게 입혔다. 있는 그대로 사랑받기를 원하는 건 이기적인 바람인지 모른다. 적어도 잭의 앨리를 향한 사랑은 그녀 그 자체를 사랑하는 것이어서 더 대비되었는지 모른다. 앨리는 지난날의 초라했던 과거에 본인의 음악을 할 수 있었던 때만큼이나, 대중들의 요구에 맞추어 본인의 색을 잃어버린 음악의 열심이다. 그래야 앨리 본인의 음악을 할 수 있을 것이라 믿는 것처럼 말이다. 이러고 보니, 잭이 앨리에게 느끼는 감정은 질투가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잭의 사랑이 대중의 사랑보다 모자라서, 앨리는 대중들을 위한 음악을 만들고 노래하고 춤을 춘다. 잭은 그렇게 생각했던 것 같다. 하지만, 앨리는 행복해한다. 앨리가 성공 가도를 달릴수록 잭은 나락으로 떨어진다.
2. 빛나던 사랑은 바래져 가고
처음 그들이 바에서 만났던 상황이 떠오른다. 가수 지망생과 톱스타, 그리고 이제는 톱스타와 인기가 한물 가 버린 락스타로 역전이 되어버린 관계가 씁쓸하다. 잭은 본인이 스스로 목숨을 끊기 전, 마지막으로 쓴 노랫말을 피아노를 치면서 부른다. 앨리는 그의 노래를 추모식에서 부른다. 앨리를 처음 무대로 올려 세웠던 앨리의 자작곡이다. 그 장면이 지나간다. 잭은, 본인의 약물중독이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의 명예를 쥐고 흔들었음에 절망한다. 그 절망감에 잭은 무대에 오르는 대신, 다른 선택을 했다. 어떤 절망이었을지 가늠이 되지 않는다. 영화의 마지막을 보면서, 질투라고 느꼈던 감정보다 더 정확한 단어가 필요하다는 것을 느꼈다. 어쩌면 잭은 자신이 행복했던 순간을 잊지 못하고 마음에 품고 사는 사람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진심은 항상 술에 취한 채 표현할 수 있었다. 어느 순간, 잭이 술에 취해있지 않을 때의 말과 행동은 거짓이라고 느꼈다. 그렇지만 앨리와 사랑에 빠진 그 순간만큼은 진심이었겠지 생각해야 마음이 편하다. 사랑은 빛났고 사람은 그 사랑만큼 빛나지 않았던 그때를 기억한다면, 사랑은 바래지고 사람은 사랑의 빛을 빼앗아 간 이기적인 존재와도 같다.
3. 나에게만 반짝이던 사람이 모든 사람에게 반짝거릴 때
앨리의 재능을 사랑한 걸까, 아니면 앨리 그 본연의 모습을 사랑한 걸까 질문이 생긴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의 변화로 인해 내가 불행하다면 그것 또한 사랑이라고 스스로를 위안하며 관계를 유지할 수 있을까, 그렇다면 나는 나의 연인의 변화를 보며 어떤 생각과 마음을 가지고 있길래 편하지 않은 걸까 와 같은 질문들이 떠오른다. 나의 꿈, 나의 한계, 나의 능력을 넘어선 그 모습을 나는 진심으로 축하하고 행복해할 수 있을까, 그리고 어떤 시절의 나는 가지고 있었지만, 현재는 잃어버린 그것들을 가진 나의 사랑을 어떻게 바라볼 수 있을까 생각했다. 지나간 시간이 지나간 대로 두는 일은 쉽지 않다. 그 일이 쉬웠더라면 후회나 미련과 같은 단어들은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지나간 내 과거의 청춘과 열정보다 현재 내 연인의 재능과 열정을 저울로 재보고, 재단한다. 비교와 질투는 더 깊고 끈적거리는 늪으로 끌어당긴다. 나의 연인이었으나, 만인의 연인이 된 나의 하나뿐인 사랑을 바라보는 그의 눈빛은 어떠한 단어로 설명이 불가능해 보인다. 만인이 주는 사랑의 온도는 놀랍도록 뜨겁지만, 언젠가 다가올 무관심의 온도는 얼어붙을 듯 차가울 것이다. 잭이 느꼈던 그 온도를 앨리도 느끼게 될 것이다. 앨리가 받게 될 상처를 잭은 예상하였을까 궁금하다. 그래서 예전 모습 그대로 있어 주길 바랐는지도 모른다. 한 사람이 주는 사랑만으로도 충분하지만, 대중의 사랑은 버거울 만큼 넘치기 마련이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