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역사적인 사실을 깨부순
히틀러의 죽음은 자살이다. 이에 여러 음모론과 미스터리는 무성하다. 하지만, 많은 사람은 전쟁과 폭력의 주도자의 죽음을 역사의 심판을 받은 최후가 아닌, 스스로 택한 죽음으로 기억한다.
영화는 과감히 역사적인 사실을 거절한다. 히틀러를 영화관에 가둔 채 폭발시켜 버리고, 기관총으로 무자비하게 쏘아 죽인다. 이성적인 복수 방법은 악한 사람이 법과 윤리에 근거한 처벌을 받는 것이다. 더하여 자기 행동에 죄책감을 품으며 평생을 고통 속에서 살기를 바란다.
개인의 복수가 성공하는 경우는 드물다. 설령 악한 자가 무너진다고 하더라도, 잠시일 뿐이고 개인의 고통은 사라지지 않기 때문이다. 악한 자에게 품은 복수는, 다른 곳에서 보란 듯이 피어나는 다른 악에 의해 다시 무너진다.
2. 잔인하지만 통쾌한 복수
역사적인 배경이 있기에, 우아하고 조용한 형태의 보복보다 처절하고 잔인한 형태의 복수를 택한 것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더구나 악한 자의 이야기를 담아내서 기어코 동정표를 받아내고야 마는 다른 영화나 드라마와는 차별점을 둔다. 세계의 시간을 멈춰버린 전쟁을 일으킨 범인이기도 하니까 말이다.
종종 뉴스를 보면서도, 어떤 이들은 입에 담을 수 없는 고통을 주어야 한다고 생각해 본 적이 누구나 한 번은 있을 것이다. 이성은 말리지만, 감성은 앞서간다. 악마를 없애기 위해 악마가 되어야 한다는 말이 있다. 나치라는 시대의 괴물을 죽이기 위해, 미국계 유대인으로 구성된 이 바스터즈는 괴물이 된다. 나치를 생포하고, 머리 가죽을 도려낸다. 포로로 잡힌 독일군에게 자백받고 이마에 나치의 상징 기호를 칼로 새긴다. 잔인하지만, 통쾌하다.
영화에서는 유대인들을 나약하고, 보호받아야 할 피해자로 그리지 않는다. 그들은 생존자이고, 그들 민족이 받은 폭력을 되갚아주기 위해 기꺼이 폭력을 감수한다. 독일군을 배신한 첩자의 역할은 막중하다. 독일군을 눈속임하고, 적군에게 유리한 정보를 제공한다. 그중 한 병사는 바스터즈에서 유명한 독일군 킬러가 된다.
3. 해방감과 슬픔
영화관에 불을 지르고, 기관총을 연사하는 장면에서 해방감과 묘한 슬픔이 느껴졌다. 영화관은 닫혀있고, 도망갈 곳은 없다. 불이 나고, 폭탄이 터지고, 총알이 날아온다. 아우슈비츠의 광경도 이와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가스실에 가둔 채 유대인들을 학살하고, 비인간적인 대우를 한 그들이었다.
어쩐지 상상으로 그려낸 장면이 영화에서 보여준 장면과 겹쳐 보였다. 처절한 비극이면서 동시에 유쾌한 복수였다. 후련함으로 치부하기엔 폭력으로 다른 폭력을 누르는 모습은 비참했다. 그러나 역사 속 최악의 독재자는 자살로 그의 인생사에 '만약'을 불러일으켰다. 그에게 서사를 부여하고, 피해자들은 잊혀갔다. 아직도 신비 속에 그는 존재한다.
영화에서 이 독재자를 총으로 난사한 장면은 이 사람에 대한 시각이 어떻게 닿아야 하는지 보여준다. 히틀러의 죽음으로 전쟁은 끝이 났을지 모르나, 낙인은 영원하다. 독일군의 이마에 새긴 표시도, 전쟁의 피해자들에게 남은 상처도 영원하다. 적어도, 괴물에게 착하게 살 기회를 주고 법의 정의로움을 발산하는 시간을 주는 대신에 그에게 낙인을 찍은 모습은 인상적이다. 누군가는 용서할지라도, 적어도 나는 당신을 평화 속에서 여생을 살도록 내버려 두지 않겠다는 모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