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우연히 만난 그리운 시대
자신이 살아본 적 없는 시대를 그리워하는 주인공 길. 그는 1920년대의 파리를 그리워한다. 예술적 영감이 폭발했던 그 시대를. 그는 혼자서 파리의 거리를 배회하다 우연히 나타난 차에 올라탄다. 길은 자신이 꿈꾸었던 가장 아름다웠던 시절의 풍경을 마주한다. 존경해 마지않는 작가와 예술가들을 만난다. 그들은 길을 환영한다. 현실에 살고 있는 사람들보다 어쩌면 정서와 감정이 잘 통하는 것 같다. 길은 시대를 잘못 태어난 걸까. 자신의 작품과 예술관에 대해 파티에서 만난 예술가들은 사뭇 진지하다. 현실적인 문제들은 파티 속에서 다 흐려진다.
문제는 그의 약혼자 이네즈는 그의 말을 믿지 않는다. 비현실적인 일이지만서도, 섭섭하다. 소설가에 대한 꿈에 지분이 있는 과거 속의 그들의 말을 믿지 않는다. 현실 속에 현학적이고, 잘난 체하기 좋아하는 친구의 말을 이네즈는 더 믿는 것으로 보인다. 결혼을 앞둔 자신의 약혼자보다, 많은 것들을 알고 지식에 대한 자부심이 있는 친구를 더 신뢰한다는 것. 나라면 이 사람과 함께하는 미래를 꿈꿀 수 있을까?
2. 현실 속의 꿈의 무게
현실 속에서 꿈의 무게는 가볍다. 꿈은 살아가는 데 있으면 좋고, 없어도 살아가는 데 지장을 주지 않는 그런 종류의 것일까. 꿈은 어쩌면 산소 같아서, 무언가를 이루고 말겠다는 희망이 없이는 살아갈 수 없을 것만 같다. 적어도 1920년대의 파리에서는 말이다. 그 시절의 사람들은 나와 내가 살아가고 있는 세상을 더 나은 모양으로 만들 수 있을 것만 같다.
길의 소설은 과거 그 시절로부터 호평을 받는다. 그들은 예술과 문학에 진지하다. 세상에 중요한 것은 그런 것뿐이라는 듯이. 바로 이곳에서 아드리아나를 만난다. 1920년대의 아드리아나는 21세기를 살고 있는 길을 끌어당긴다. 아드리아나는 여느 예술가들의 연인이자 뮤즈이다. 그가 생각하는 가장 아름다웠던 시기는 바로 벨 에포크 시대이다. 화려한 조명과 분위기, 그 시절이 내뿜는 향수와 같은 것들을 그리워한다. 그들은 우연한 기회에 벨 에포크 시대로 입장한다.
그곳의 분위기와 예술적 현상들은 그 시대가 가장 아름답고 훌륭했음을 공작새처럼 뽐내며 보여준다. 벨 에포크 시대에서 만난 예술가들은 말한다. 내가 생각하는 가장 최고의 시기는 르네상스 시대라고. 그 시기가 가장 아름다웠던 시절이며, 지금은 별 볼 일 없다면서 말이다.
길은 이 대화를 통해 깨닫는다. 지금을 살아가고 있는 이들은 자신이 살아보지 못한, 경험해 보지 않은 과거를 동경하고 있구나.
길을 통해 느낄 수 있었다. 사람들은 과거의 아름다움을 현재의 피로감과 무게를 재고 평가하는 구나. 현재는 불안으로 가득 차 있고, 미래의 누군가에게는 내가 살고 있는 현재가 가장 아름다웠던 시기이며 돌아가고 싶은 시기이겠구나. 그렇다면 나는 내가 생각하는 과거의 영광스러운 순간에 푹 빠져 살아갈 것인가, 아니면 현실로 돌아오겠는가.
3. 현재를 살아간다는 것
무조건 과거가 영광스럽고 아름다운 것만은 아니다. 그 시절만이 할 수 있는 생각, 감정표현들이 우연히 그 시대에 태어난 것이다. 그만큼 외면하고 싶은 일면도 종이의 앞면과 뒷면처럼 존재할 것이다.
아드리아나는 벨 에포크 시대에 남겠다고 한다. 길은 1920년대로 돌아온다. 그리고 다른 작가에게 소설에 대한 비평을 듣는다. 다름 아닌, 자신의 약혼자의 외도와 관련된 이야기였다. 한 시절에 대한 환상에 사로잡혀 현실을 제대로 바라보지 못했다.
사랑하는 그 순간만큼은 죽음과 불안에 대한 생각이 사라질 수 밖에 없는데, 이네즈와의 사랑은 불안했고 길은 그것마저도 사랑이라고 착각했던 것이다. 현실로 돌아온 길은 파리에 계속 머물기로 한다. 비가 오는 날, 우산 없이 걸어도 아름다운 거리 파리에서 소설을 마저 집필하기로 한다.
현실의 불안감에서 나와 함께하는 이 사람들과의 관계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만든다. 어느 시대나 불안, 불만, 불행한 일들이 존재했다. 그 시대를 살아간 사람들에게 현재를 살아가게 만들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바로 사랑과 예술이었을지 모른다. 아름다운 것들을 마주하고, 아름다운 것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들어주는 시간, 그래서 잠시 생존과 죽음에 대해 잊을 수 있었던 그 시간이 있기에 살 만한 세상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