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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스탕: 랄리의 여름, 빼앗긴 여름을 되찾을 수 있을까

by easyant 2024. 5.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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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무스탕: 랄리의 여름>

1. 여름을 빼앗아 가는 이유는 단 하나

여름은 푸르고, 반짝이고, 때로는 열기를 주체하지 못해 끓어오른다. 사람을 계절로 표현한다면, 여름은 영화 속 다섯 소녀의 모습과도 같을지도 모른다. 사소한 일로 다투고, 웃기도 하는 모습은 질투가 날 정도로 소란스럽다. 이 아이들의 할머니는 소녀들의 소문을 듣는다. 남자아이들과 바닷가에서 노는 모습을 본 이웃의 말에 아이들에게 손찌검하고, 크게 화를 낸다. 결혼을 위해 몸가짐을 얌전히 해야 하기 때문이다. 심지어는 병원에 데려가 순수함의 증거를 기어이 찾아내고야 만다. 여름은 한순간 반짝하는 계절이다. 아이들은 집 안에서 결혼을 위한 교육을 받고, 칙칙하고 얌전한 원피스를 입으며 생활한다. 결혼을 위해 준비된 상품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축구 경기를 위해 탈출하는 자매들의 의지는 결연하다. 축구에는 관심이 없지만, 자유가 필요하다. 이들의 탈출을 적극적으로 응원하게 된다. 결론은 무시무시했다. 텔레비전 중계 화면에 잡혀 탈출을 들키게 된 아이들은 창문과 출입문을 더 공고히 용접된 방에서 지내게 된다. 삼촌의 말은 거역할 수 없는 법도와 같았으며, 이를 어기는 것은 큰 죄이기 때문에 용서받을 수 없었다. 이 이후, 할머니와 삼촌은 자매들을 하나씩 결혼시키려고 한다. 성숙하고, 말 잘 듣는, 집안일을 성실하게 해내는, 그야말로 요조숙녀로 만들어 결혼을 성사하려는 것이다. 그동안의 신부 수업은 이 결혼을 위해 진행된 과정에 불과했다. 아이들은 연애도, 결혼도 자신의 의지대로 이룰 수 없는 현실을 마주한다. 진열된 상품을 제값에 주고 파는 상점에 갇힌 셈이다. 

2. 공주는 성 안에 갇혀버린다.

동화책에서 볼 수 있는 내용은 다음과 같다. 마녀에 의해 성 안에 갇힌 공주는 탈출을 꿈꾸지만, 혼자서는 해낼 수 없다. 결국 왕자가 나타나 적들을 물리치고 공주를 구해낸다. 동화 속 공주는 백마 탄 왕자 없이는 절대 탈출할 수가 없다. 몇 번 탈출의 과정은 번거로웠지만, 성공했다. 창문 밖으로 나가 사랑하는 연인을 만나고 오기도 하고, 축구 경기를 보러 다 같이 몸을 숨기면서 말이다. 하지만, 진정한 탈출은 아니었다. 할머니와 삼촌의 허락이 구해진 탈출은 결혼밖에 없었다. 결혼 또한 할머니와 삼촌이 지키는 성에서, 남편과 그의 가족이 지키는 성으로 갇히게 되는 똑같은 구조의 반복이었지만 말이다. 다섯 자매 중, 누르의 결혼식에서 오직 세상에 둘만 남은 누르와 랄리는 집 안에 스스로를 가두어 버린다. 밖에는 결혼식을 치르려는 가족들이 아우성친다. 랄리의 세상을 가득 채웠던 언니들을, 소중했던 추억들을 더 이상 잃고 싶지 않았을 것이라 생각한다. 랄리와 누르는 탈출에 성공한다. 어른들이 세워둔 공고한 장벽을 몰래 달아났다. 백마 탄 왕자는 없었다. 

영화 <무스탕: 랄리의 여름>

3. 여름은 길었고, 곧이어 다가올 계절은 어떤 모습일까.

인상 깊었던 장면들이 있다. 사과, 총, 바다, 창문, 터널이 바로 그것이다. 바닷가에서 뛰어놀다가 우연히 사과밭에서 사과를 훔쳐 먹다가 주인에게 들킨다. 주인은 총으로 아이들을 위협한다. 반면, 영화 속 다른 남자 어른은 똑같이 생긴 사과를 한입 크게 베어 문다. 별것 아니겠지만, 뱀의 유혹으로 선악과를 베어 물은 이브가 떠올랐다. 마치 욕망과 청춘의 감정 동요는 이제 끝이라는 듯이 불쾌한 눈빛으로 위협하는 듯했다. 총은 사과밭에서 그 주인이, 소냐와 셀마의 결혼식에서 신이 난 삼촌이, 에체의 선택이, 누르와 랄리의 탈출을 쫓아가는 삼촌이 그 총을 쥐었다. 누군가가 총을 쥐고 있다면, 그 의도가 위협이 아니더라도 두려움을 느낄 수 있다. 커다란 소음과 피할 수 없는 고통이 방아쇠를 당기기 전에도 느껴지니 말이다. 마음껏 누릴 수 있었던 바다는 창문 너머로 보아야만 하는 하나의 이상적인 세상이 되어버렸다. 더운 여름날, 신부 수업 때 입어야만 했던 칙칙한 원피스와 주방에서 들어야 했던 교육과 달리 창문 너머의 세상은 평화롭고 아름다워서 슬펐다. 터널은 초반에 병원에 다녀와야 했던 아이들이 삼촌의 차를 타고 집으로 가는 장면이 인상적이었다. 어두운 터널의 끝에는 삼촌의 말에 무조건 순응해야만 하는 집이 있었다. 마지막 장면의 탈출에 성공한 아이들이 지나간 터널 끝에 새로운 세상이 있음과 대비되고 있었다. 여름은 지나갔고, 이제 남아있는 계절은 가혹할 것이다. 혼자 살아남지 않고, 두 손 꼭 잡고 탈출에 성공한 아이들을 응원하게 된다. 여름은 잔혹했고, 그 이후 다가올 여름은 더는 예전과 같지 않을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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