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모가디슈, 두 개의 권력으로부터 탈출하기 위하여

by easyant 2024. 4. 16.
반응형

영화 <모가디슈>

1. 이미 지나간 이야기

1990년대 소말리아에서 탈출한 남한과 북한 외교관들의 이야기이다. 살아있는 권력과 그것을 빼앗으려는 권력, 그 사이에서 희생당하는 국민들이 등장한다. 90년대 소말리아에서 뿐 아니라, 불과 몇십 년 전의 한국의 상황과도 일맥상통한다. 피부색이 다르다고 남의 이야기가 아니었고, 언어가 다르다고 이해하지 못할 이야기가 아니었다. 국민들을 지키지 못하면서 무력하게 방치하는 정권, 시민들을 폭도로 규정하고 총을 들이대는 무장세력들의 모습이 20세기 우리나라의 모습과 빗대어 봤을 때 이질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어느 편에 속하느냐에 따라 운명이 바뀔 수도 있는 상황이 지속된다. 이것은 운명이 스스로 개척하는 것이 아닌, 다른 이의 선택으로 무력화될 수 있음을 암시한다. 그 무력감 앞에서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생존뿐이다. 생존하기 위해 칼과 총을 들어 서로를 겨눈다. 탈출 장면에서 가장 소름 끼치고 무서웠던 것은, 무장세력들 사이에 있는 총과 칼을 든 어린아이들이었다. 폭력으로 인한 고통과 울부짖는 소리, 총소리가 일상인 나라의 아이들은 평화로움이란 부자연스러운 상태일 것이다. 이미 지나가 버린 일을 마주하는 것은 어쩌면 고통스러운 일이다. 누군가는 금세 잊어버렸을 것이다. 외면하는 일은 현실을 살아가기 위한 하나의 방법이기도 하니까 말이다. 내가 편하게 살아남는 방법과, 더 고통스럽고 불편하게 함께 살아남는 방법의 하나를 고른다면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을지 스스로 질문하게 했다. 

2. 폭력으로 얻을 수 있는 것

폭력이 자연스러운 나라에서 벗어나기 위해 보다 순응하는 것이 생명을 유지하는 것이 더 이치에 맞는 일일 것이다. 어쩌면 평화로움이라는 부자연스러운 상태를 모른 채 자라난 사람들은 탈출이라는 단어조차 생존에 불리한 것이 아닐지 생각한다. 희망이라는 가치가 폭력으로 얻은 부와 명예로 이룰 수 있는 것이라면, 나도 그렇게 나의 희망과 꿈을 품고 살 것이다. 나라는 나를 지켜주지 않고, 나를 지키는 것이 오직 칼과 총이라면, 다른 아이의 손에 그 누구라도 총과 칼을 쥐여주지 않을 수 없다. 방어의 수단이 그것뿐이라면 말이다. 권력다툼의 상황 자체가 마치 좀비와도 같다고 느껴졌다. 살아있는 것들을 향해 달려들고 물어뜯어서, 기어이 본인들과 비슷한 존재로 만들어 버리는 좀비 말이다. 좀비가 된 존재들은 본인의 존재 이유를 망각한 채, 남아있는 존재들로 하여금 끊임없이 존재 이유를 묻는다. 좀비로 변해버린 소중한 존재들에게 무기를 들어야 하는 사람들을 흔들어 버린다. 나의 나라에 사는 같은 언어와 생활 방식을 공유하는 사람들에게 총과 칼을 드는 현실은 좀비가 창궐한 스토리와 무엇이 다를지 생각해 보게 된다. 자기 자신의 생각이 아닌, 어떤 힘과 권력으로 인해, 가치관과 종교로 인해, 신념과 무지로 인해 지배되어 내가 아닌 타인을 공격한다는 것은 나 자신과 타인을 해치는 행위이다. 이 전쟁에서 누가 이익을 얻고 있을지 물어본다면 고개는 아래를 향한 것이 아닌, 위로 향하게 될 것이라 예상한다. 

영화 <모가디슈>

3. 하나가 된 줄 알았으나, 결국 둘이 되어버린

모가디슈에서 탈출한 것은 기적과도 같은 일이었다. 각자도생인 줄 알았으나, 누구보다도 서로 생존을 바랐다. 함께한 시간은 짧았지만, 동일한 언어와 생김새를 가진 완전한 타인에서 동지로 변하는 과정은 힘겨웠다. 탈출 이후 이념과 사상, 그리고 우리가 선택하지 않은 것들로 인해 함께 역경을 뚫고 탈출한 남한 사람들과 북한 사람들은 결국 케냐에 도착했다. 비행기 착륙은 안부의 인사말 없이 다시 완전한 타인으로 돌아가는 신호였다. 같은 역경을 넘어왔지만, 이들은 더 이상 눈을 마주칠 수도 없다. 모래시계에서 떨어지는 모래로 인해 서로에 대한 공감과 연민은 묻히기 마련이다. 영화는 그 모래시계를 다시 세워 그때의 우리가 서로에게 가졌던 감정들을 다시 보여준다. 같이 살 수 있는 방법이 있음에도, 그것을 외면한다면 진정한 생존이라 부를 수 있을까 질문을 던져주었다. 모래시계를 깨서, 우리가 우리의 역사와 그 속에 묻힌 사건들을 잊어버리지 않기를 바란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