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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담 프루스트의 비밀정원, 어떤 기억은 해명되지도 못한 채 사라지기에

by easyant 2024. 6.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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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마담 프루스트의 비밀정원>

1. 어린아이인 채로 몸만 자라난 어른

 말이 없는 남자, 폴. 그는 어렸을 적 부모님을 잃은 기억을 마음에 상처로 남긴 채 살아간다. 폴의 꿈은 자신이 유아차에 타고 있고, 부모님은 자신과 함께 어디론가 가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아버지는 내내 말하지 않았다가, 자신을 쳐다보는 순간 잠에서 깬다. 악몽이다. 어머니는 다정하지만, 아버지는 무서워 보인다. 

 그를 돌보는 건 두 이모다. 이모가 운영하는 댄스 교습소에서 폴은 기계처럼 피아노를 친다. 행복해 보이지 않는다. 인생에 남은 것이라고는 이모와 피아노뿐인데, 이마저도 자기 뜻대로 하는 것은 아닌 듯하다.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이 이것밖에 없어 체념한 것일까. 폴은 말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말하지 않기로 결심한 사람이다. 

 우연한 계기로 아래층에 사는 마담 프루스트의 비밀정원에 들어선 폴. 그곳에서 마담 프루스트는 신비한 차와 마들렌을 내어준다. 차를 마신 이후에는 최면에 빠진 것 같이 환상 속으로 빠져든다. 기억이라는 수면 위에서 나쁜 기억은 가라앉도록, 행복한 기억은 떠오르도록 만든다. 음악이 이를 돕는다. 마담 프루스트는 폴에게 비밀정원에서 있었던 일을 둘러대라며 각종 채소를 들려 집으로 보낸다.


2. 기억나지 않는 기억은 상처가 되어 평생을 따라간다 

 폴은 트라우마에 빠졌다. 부모의 죽음을 목격한 목격자이자, 그 기억으로 상처를 입은 피해자이다. 그것도 기억이 희미한 아주 오래전 과거에 있었던 일로 인하여. 

 마담 프루스트가 내어주는 차와 마들렌, 그리고 음악은 사람들을 치유하기 위함이다. 행복한 기억이 물고기라면, 음악은 미끼이다. 기억과 관련된 음악, 그것이 기억을 되살리는 데 도움을 준다. 하지만, 폴에게 음악은 지겨운 일상의 반복일 뿐이다. 음악은 아무 의미가 없다. 밥을 먹고, 샤워하고, 일을 하듯이 아무런 감정 없이 하는 일 중 하나이다. 

 모두가 폴의 어린 시절, 그의 미래를 기대했다. 두 이모는 폴이 피아니스트가 되기를 바랐고, 아버지의 친구는 악기 연주자가 되기를 바랐다. 마지막 한 사람, 어머니는 폴이 원하는 것을 하기를 바란다. 다정하고 따스한 미소를 띤 채. 폴은 어머니가 바라던 아들이 되지 못했다. 오히려 이모들의 바람대로 성장했다. 


영화 <마담 프루스트의 비밀정원>

3. 비극이 희극으로 바뀌는 순간

 폴에게 사랑은 요원한 일이다. 자신의 기억 속에 있는 상처가 치유되지 않아서, 아마 상대방을 멀리하는 것으로 보인다. 부모님의 사랑 결실인 자신이 결국, 비극의 목격자가 되었고 같은 상처를 반복하지 않으려는 것 같다. 

 개구리 악단의 앨범을 들으며 폴은 환상에 빠진다. 그 환상 속에 빠져들어 가면서, 어머니는 아버지에게 폭행당하고 있었다. 분명한 악몽이다. 개구리 악단은 연주를 계속한다. 그리고 꿈속의 장면을 가득 채운다. 수수께끼 같고, 농담 같은 장면이다. 그동안의 행복했던 장면들은 꿈같이 사라졌다.

 폴은 피아노 대회에 나가서 개구리 악단과 합주하는 듯한 환상에 빠진 채 연주한다. 폴에게는 비극의 상징이었던 개구리들이 어느새 희극으로 바뀌었다. 아마 폴에게 이 순간 처음으로 느꼈을 것이다. 음악이 그 자체로 위로가 된 순간 말이다. 자신의 기억 속에 자신과 가족들을 연결해 주고, 현실을 살아갈 힘이 되어준 것은 바로 음악이었으니까.

 아버지의 폭행은 다름 아닌 쇼를 위한 퍼포먼스였다. 어린 시절의 기억만으로, 아버지는 해명을 구하지도 못한 채 오해로 남겨져 버렸다. 오해가 없었더라면, 아니 죽음이 아니었다면 이런 오해로 인해 상처를 입을 일은 없었을 것이다. 

 이모들이 자리를 비우고, 마담 프루스트가 남겨준 차와 마들렌을 먹은 폴은 환상에 빠진다. 폴이 목격한 부모님의 죽음은 처참했다. 끔찍한 사고가 기억 속에 나타났을 때, 그리고 그 사고에 대해 이모들이 다시 말해줬을 때 폴은 다시 살아날 수 있었다. 바닷속 깊은 곳으로 들어갔다가 다시 올라오는 한 장면과 같이. 심해 속에 어둡고 무서운 기억을 마주하고, 수면 위로 나오면 환한 햇살을 마주할 수 있을까. 바다와 맞닿아 있는 하늘이 무슨 색이든 간에, 가쁜 숨을 몰아쉬고 나면 현실을 뚜렷하게 마주할 수 있다. 

 마담 프루스트는 사람들에게 환상을 보여주며, 현실과 균형을 잡도록 도와주었다. 과거의 선택 속에서 결정되어 버린 현재에 숨이 막혀하는 이들로 하여금, 환상 속에서 그 상처를 해소해 준다. 저 깊은 기억 속에 남겨진 것들을 되살려 준다. 현실을 제대로 바라볼 힘을 준다. 그리고 그녀는 저 멀리 떠나버린다. 

 폴은 자신이 아이였을 때 어머니가 해주신 말처럼 하고 싶은 일을 하게 되었다. 마담 프루스트의 우쿨렐레로 사람들과 함께한다. 이모들의 댄스 교습소 대신, 폴의 악기 교습소가 그 자리를 대신한다. 이모들은 자신들이 이루고 싶었으나 이루지 못했던 꿈을, 폴을 통해 이루고자 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이모들은 과거의 영광 속에 취해서 현재를 바라보는 일에는 둔했으니까. 

 슬픔 속에 깊이 빠져본 사람만이 사람들에게 위로를 줄 수 있다는 듯이, 폴의 표정은 행복해 보인다. 피아노를 치고 있을 때도, 피아노 대회에서 큰 성과를 얻었을 때도 볼 수 없었던 표정이다. 그리고 그는 사랑을 한다. 자신의 상처를 마주하고 난 이의 표정은 얼마나 편해 보이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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