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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플리, 거짓말이 되어버린 인생 한 조각

by easyant 2024. 4.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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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리플리>

1. 무너져버린 테세우스의 배

여기에 배 한 척이 있다. 아주 오랜 시간이 걸려, 그 배의 부품 하나하나를 빼 와서 원래 있던 배와 똑같은 배를 만든다. 원래 있던 배와, 새로 만든 배는 같은 배라고 생각할 수 있을지에 대한 질문이다. 부품과 재료 등은 모두 같은 것이기에, 같은 배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원래 있던 배의 존재는 사라졌다. 부품과 재료가 같다고 해서 동일한 배라고 볼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역설이다. 이탈리아에 있는 디키는 온전한 배 한 척과도 같다. 리플리는 디키에 대한 정보를 한 조각씩 모아 새로운 배를 만든다. 공통점이란 새로운 관계를 더 가깝게 만드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리플리가 수행해야 하는 계획은 진실로만 다가갈 수 없었다. 신분을 위장하고 거리를 좁힌 뒤, 디키의 인생 일부를 그리고 전부를 천천히 빼앗아 갔다. 리플리가 디키와 프레디를 죽인 것은 변하지 않는 사실이다. 나쁜 행동임에는 분명하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리플리가 들키지 않기를 속으로 바랐다. 그에게 행복의 요인이 신분 상승, 부와 명예와 같은 것들이라면 노력해서 얻은 것은 아닐지라도 손에 쥐고 있기를 바란 것인지도 모른다. 손에 쥐고 있던 행복이 허망함을 남겼을 때 리플리의 행동과 표정이 영화 속에 드러나기를 바랐다. 마지막까지 리플리는 거짓말을 들키지 않고, 법적 책임을 지지 않았다. 
기분이 이상했다. 바람대로 이루어졌는데, 그의 행복을 바라는 마음은 식어버렸다. 행복할 수 없을 것이다. 그건 확신이었다. 자기 모습을 분해해, 다른 사람을 만들어냈다. 흉내 내는 것, 따라 하는 것을 잘하는 그였다. 그것은 그의 재능이었다. 리키의 부분을 해체하고 조립해 만들어낸 것은 리플리 자신이었다. 리플리는 끝까지 자기 자신이 되어보지 못한 채 떠돌 것이다. 리플리의 조각들은 이미 거짓말로 이어 붙인 엉성한 배 한 척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2. 믿음에 관하여

피아노를 치는 주인공보다, 리플리는 피아니스트들의 피아노를 조율하는 무대 뒤편의 사람이었다. 그는 인생이라는 무대에, 자신을 주인공이 아닌 무대 뒤편에 서 있었다. 그는 항상 수많은 '만약' 속에 머무르고 있었다. 조건부 행복은 조건이 달성되었다 할지라도 행복하기 어려운 법이다. 다른 이들이 가지고 있는 탐이 나는 조건들이 주변을 돌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이 되면, 즉 신분 상승이 되면 다른 이들의 인정을 받을 수 있을 거라는 생각과 초라한 나의 모습을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을 거라는 생각은 독이 되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그의 모습은 행복해 보였지만 더욱더 초라해졌다. 다른 이의 인생을 흉내 내는 리플리 자신은, 결코 원래 자기 모습으로 돌아올 수 없었다. 언젠가 들통이 나버릴 거짓으로 인해, 마음 편히 머무를 곳 없을 것임이 분명하다. 가면을 쓰고 평생을 살아야 하는 배우가 되어버린 것이다. 연출과 감독, 시나리오까지 전부 한 명인 연극이 되어버렸다. 연극은 누군가에게 보여주고, 관객과 상호작용을 하는 예술이다. 그의 인생도 예술이라 할 수 있을까. 누군가에게 보이기만 하는,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1인극의 주인공인 리플리는 배에서 사람을 죽였다. 그는 그렇게 인생의 주변을 떠다닐 것이다. 그린리프의 아버지는 제 아들이 아닌, 아들의 친구라고 믿는 톰을 믿었다. 디키의 애인은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을 믿었다. 다른 확신이었다. 아버지는 자기 아들을 원래 그렇게 살아온 아이기에, 앞으로도 그렇게 살아갈 것이라고 믿었다. 자기 아들을 사랑하지 않았다. 디키의 연인은 자신에게 보여준 행동과 말을 믿었다. 자신에게 보여준 마음은 진심으로 생각했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 믿었다. 그는 디키를 사랑했다. 톰은 분명 변할 수 있었다. 피터와의 감정은 진심이었을 것이다. 믿음은 상대방에 대한 주관적인 평가이지 않을까 하는 정의를 내린다. 믿음이란, 대상에 의지하고 의심 없이 대하는 것이다. 그 대상을 신뢰하고, 감정적인 상호작용이 충분하지 않다면 생길 수 없는 것이다. 리플리는 세상을 믿지 않았다. 세상이 정의한 행복은 조건부였고, 그 정형화된 틀에 맞는 사람은 그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영화 <리플리>

3. 모든 것을 얻었으나, 모든 것을 잃어버린

그는 결국 어둡고, 깊은 지하실로 들어가 문을 닫고, 문을 잠갔다. 자기 몸을 보호하기 위해, 아무도 들어갈 수 없고, 아무도 찾을 수 없는 그런 곳으로 숨어 버렸다. 바다 한가운데에서 방향을 잃어버린 채로 사라진 것이다. 그런 곳에서 리플리는 결코 행복할 수 없을 것이다. 모든 것을 얻었지만, 모든 것을 잃었다. 스스로를 잃어버린 채로 결코 완전해질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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