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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디 버드, 내가 지은 나의 진짜 이름

by easyant 2024. 6.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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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레이디 버드>

1. 나는 "레이디 버드"

 부모님이 지어준 내 이름 말고, 내가 지은 이름으로 살고 싶다. 나의 이름은 애초에 내가 정한 게 아니니까. 나도 내가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난 건 아니니까. 그러니까 일상에서만이라도 레이디 버드라고 불러달라는 게 뭐가 어때서. 평범한 건 싫고, 나도 내 가족도 전부 평범에 못 미치는 것 같다. 

 레이디 버드가 사는 동네가 새크라멘토가 아닌 다른 동네였다면, 그렇게 가고 싶었던 명문 대학이 있는 도시였다면 레이디 버드는 어땠을까. 아마 그곳도 그에게는 새장과 같았을 것이다. 청춘에게 가족과 친구, 집안, 연애, 공부 그 모든 건 자유를 억압하게 만드는 새장이니까. 더 멀리, 더 나은 것을 보고 싶지만 어떤 것도 도움을 주지 않는다. 우선, 철도 옆에 살고 있는 것부터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창피하다. 

 새로운 연애의 시작. 친구와 함께 들어간 연극부에서 연애를 시작한다. 그리고 뜻밖의 계기로 연애와 연극 둘 다 포기한다. 벽에 새긴 애인의 이름은 가운뎃줄로 죽죽 긋고 만다. 연극은 부자연스러운 세상에서 자연스러운 감정 표출구였다. 사랑이 사라지고, 레이디 버드의 단짝인 줄리와도 거리가 멀어지면서, 새로운 친구가 생긴다. 이 학교와 어울리지 않는 인기 있는 친구가. 연극은 끝났지만, 레이디 버드의 연극은 이제 시작이다. 구질구질한 솔직함보다 반짝이는 거짓말로 자신을 꾸민다. 


2. 새장 안에서 바라본 세상은

 학교는 나의 자유를 억압한다. 누구나 겪어봤을 것이다. 학교로 인해 내가 억압되었다고 느꼈지만, 어쩌면 학교는 나를 길러주는 곳이었다. 서투른 관계 형성과 자아를 찾아가는 과정, 이리저리 튀는 감정들을 고스란히 관찰할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자, 놀이터 같은 공간. 하지만, 레이디 버드는 이 공간이 불만스럽다. 잔소리하며 충고하는 어른들 사이에서 숨 쉴 곳을 찾는다. 

 내 마음과 데칼코마니인 나의 친구, 첫 연애 상대, 인기 있는 친구, 소중한 경험을 공유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두 번째 연애 상대. 어른들의 충고와 잔소리에서 벗어나 관계들 속에서 자기 자신을 바라보기 시작한다. 이게 그토록 바랐던, 내가 지은 레이디 버드로서의 삶인가. 자유로워지고 싶다면서, 자신의 진심을 위장하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로부터 멀어지고 있는 것이 진짜 나인가. 고민하기 시작한다. 

 졸업 파티를 하러 가는 길에서 줄스의 집을 찾아간 레이디 버드는 용감했다. 주저함과 머뭇거림으로 그동안 어색해졌던 친구와의 관계를 되살리는 일은 없었다. 줄스는 레이디 버드 그 자체를 좋아했으니까. 줄스와 레이디 버드가 집에서 웃고 노는 장면은 새삼 행복해 보였다. 

 영원한 청춘은 없다. 나의 소중한 인연들도, 시간이 지나 점점 멀어진다. 나의 세상이 넓어졌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제 진짜 내가 지은 나의 이름 그대로 살아갈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영화 <레이디 버드>

3. 사랑스러운 나의 크리스틴

 그토록 벗어나고 싶던 고등학교를 떠나, 철도 근처의 구식 동네에서 벗어나 대학에 들어간다. 엄마는 보내지 못할 편지를 적고, 구기길 반복했고 아빠는 그 종이를 모아 딸에게 주었다. 진심으로 사랑하지만, 그만큼 애정과 사랑을 오롯이 다 전달하지 못하는 관계가 가족인 것 같다. 가족의 모습을 나의 모습과 동일시하기에 공감하고 이해하지 못함에 있어서 더 모질게 대하는 것이 아닐까. 

 레이디 버드는 자신이 규정한 자신의 이름 대신, 크리스틴이라 말한다. 나를 그 자신보다 사랑하는 존재가 나에게 붙이고, 불러준 그 이름을 되찾는다. 그리고 새크라멘토를 운전하는 모습이 엄마와 겹친다. 그제야 크리스틴은 본인의 조각난 모습을 모자이크처럼 이어 붙인다. 

 크리스틴이 바랐던 세상은 아름답고, 나를 중심으로 재편된 것이어야만 했다. 마음에 들지 않으면 투정도 부리고, 화도 내면서. 모자이크의 조각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못나고 생채기가 났을 것이다. 그 조각들을 모아서 보면, 완전히 못나 보이지 않는다. 크리스틴의 볼품없는 조각들마저 사랑하고, 아껴주는, 자주 나를 화나게 하는 엄마라는 존재는 어쩌면 레이디 버드가 가졌던 청춘을 똑같이 경험했을 것이다. 그래서 더 서로 아픈 말을 주고받았던 것은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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