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이 우주의 구원자
폴은 예지 능력을 어머니로부터 물려받았다. 어머니의 예지능력은 정치적인 힘을 가지고 있었고, 그 힘으로 가문을 유지하고 있었다. 미래가 정해져 있다면, 그 미래를 향한 현재의 방향성 또한 정해진다는 의미이다. 수많은 선택지 중, 생존에 필요한 선택을 내릴 수 있다는 건 행운이라는 말로 부족하다. 어쩌면 딸이 아닌, 아들로 태어난 폴에게 이 능력을 전수하게 된 건 정치적인 힘의 행사가 아닌 더 큰 운명을 예지함이 아니었을까. 행운과 불행을 미리 알고 있다는 건, 생각보다 후련한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 행운으로 인한 행복은 더 작게, 불행은 더 큰 두려움을 몰고 올 것만 같다. 불행은 그 크기와 빈도가 다를 뿐, 완전히 제거할 수 없다. 그렇기에 폴의 예지능력은 그 능력을 알아챈 순간부터 두려움이라는 감정에 포획되어 무력하게 살아갈 수도 있을 것이다. 본인의 운명에 순응하고, 두려움을 허물지 못한다면 이야기는 이대로 끝이 날 것이다. 이야기가 계속되고 있는 이상, 폴은 이 감정을 수용하는 한편 더 나은 무언가를 추구하기 위해 사용할 것이라 기대할 뿐이다.
사막이라는 단어는 그 자체만으로 막막하다는 인상을 준다. 모래바람은 사람과 동물, 기계 그 모든 것에 영향을 준다. 생존 방식이 평범한 땅을 밟을 때와는 사뭇 다르다. 이 척박한 환경을 모두가 탐내고 있다. 거주지, 군대의 중간 거점지역 등으로 본인의 나라보다 더 넓은 영토 자체를 차지하려는 것이 아니다. 다름 아닌 우주에서 가장 귀중한 물질인 스파이스가 생산되고 있는 지역이기 때문이다. 이 물질을 더 많이 가질수록, 권력은 강해진다.
2. 전쟁의 이유
전쟁이 일어나는 이유는 아마도 내가 가진 것보다 상대방이 가진 것이 더 나아 보이기 때문에 그것을 빼앗아 버리기 위함이 아닐까. 그것은 스파이스와 같은 물질이 될 수도 있고, 무형의 것인 문화와 예술일 수도 있다. 아라키스를 착취한 하코넨 가문은 아트레이데스의 적이 된다. 소형 암살 도구와 각종 방해 공작으로 아트레이데스를 불안하게 만든다. 불안은 머지않아 현실이 된다.
폴의 꿈에 나왔던 장면은 신하의 배신으로 인해 가까운 현실이 된다. 폴의 아버지가 죽음, 폴과 어머니의 납치, 탈출에 이르기까지. 신하의 부인이 인질로 잡혀있으며, 자신의 배신을 순순히 시인한다. 하지만, 가문에 대한 충성심과 인질이 된 가족 둘 다 결국 손에 놓치고 만다. 도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음이 드러나 버렸다. 믿음은 스파이스처럼 희귀한 자원이다. 스파이스를 채취하고자 하는 열망과 비슷하게 믿음과 희망을 포기하지 않고 발견해 낼 수 있겠느냐는 생각이 들었다.
3. 두려움을 대하는 법
폴과 그의 어머니 제시카는 인질로 잡혀있다가, 순간의 기지로 도망치게 된다. 폴의 기운은 강하지만, 연약하다. 신체적인 능력과 정치적인 능력 모두가 미숙해 보인다. 아라키스에 도착하고 나서, 주민들이 그를 메시아라고 부른 것은 어떤 이유 때문이었던가. 아마 두려움을 가진 연약하고 미숙한 상태에서 두려움을 극복하고 구원자가 될 운명을 미리 보여준 것이라 생각했다. 두려움은 작은 죽음이니, 이를 극복하라는 메시지가 기억에 남는다. 수많은 작은 죽음들을 이겨낸 폴이라는 존재가 언젠가 닥칠지 모르는 큰 죽음을 견뎌내는 이야기가 나올 것 같다는 느낌에서였다. 자원 전쟁, 종교 전쟁을 예지한 폴이 어떠한 장면들을 목격하게 될지 궁금하다.
자원의 희소성, 인간의 유한한 한계, 무한히 뻗어가는 욕망 등이 전쟁과 폭력을 끊임없이 생산해 내고 그로부터 두려움이 파생된다. 그리고 이를 합리화하기 위해 종교를 이용할 것이다. 누구를 위해, 무엇을 위해 전쟁을 하는가. 전쟁과 폭력의 굴레를 끊어낼 사람은 누가 될 것인가. 시작과 끝이 정해지지 않았기 때문에, 거대한 운명에 맡겨 이 전쟁의 끝을 기댈 수밖에 없다. 이 세계 안에서 두려움을 이긴 자만이 아마 온 우주를 제어할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이 생긴다. 더 나은 세계를 위한 희망으로 향하는 길은 천천히, 브레이크를 밟으며 덜컹거리는 차 안에 있다. 목적지를 향해 언제 도착할지 모르는 상태에서 운전대를 잡고 나아가는 모습을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