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두 교황, 종교적이면서 동시에 정치적인 존재

by easyant 2024. 5. 29.
반응형

 

영화 <두 교황>

1. 종교와 정치의 한가운데 서 있는 인물

교황은 종교적이면서 동시에 정치적이다. '종교적'이라는 말은 종교를 상징하는 인물이므로 도덕적, 신앙적으로 모범을 보여야 한다는 뜻이다. 또 하나는 종교인으로서 신의 대리인으로 종교의 가르침대로 살아야 함을 의미하기도 한다. 외적으로는 몸가짐을, 내적으로는 하느님의 뜻에 맞는 마음가짐을 갖추어야 한다. 교황이 가지는 의미는 생각했던 것보다 더 엄중한 것이었다. 그들은 하느님의 뜻을 우리가 어떻게 해석할 것인지, 죄를 지어서 고해성사하면 죄인이 저지른 죄는 용서받는 것인지, 하느님이 용서한다 해도 죄인으로 인해 고통을 받은 사람들의 상처가 그토록 쉽게 잊히는 것은 당연한지, 남아있는 사람들의 고통 또한 하느님의 뜻인지에 대해 끊임없는 질문을 우리에게 던지기도 한다. 그러나 가톨릭은 성 추문, 비리 등의 문제를 안고 책임자를 처벌하지 않았다. 회피하고 외면했으며 그로 인해 신도들은 교회를 떠났다. 가톨릭이 시대에 맞게 변화하지 않아서 생긴 문제인가 아니면 교인들의 문제인가, 교리대로 행하는 것이 수많은 사람의 외면을 받으면서까지 지켜야 할 하느님과의 약속인가와 같은 이전에는 없던 새로운 질문을 남긴다. 정치란, 더 나은 공동체를 위해 자신의 것을 내놓을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 더 나은 가톨릭을 만들기 위해서 교황은 종교적이면서 정치적인 선택을 해야만 한다.

2. 보수와 진보는 하나가 될 수 없을까

영화는 교황의 선출로 시작되었고, 교황은 추기경과의 대화에서 갈등을 빚는다. 교황은 교리를 중시하는 보수적인 성향, 추기경은 개혁을 바라는 진보적인 성향이었다. 그 둘의 갈등은 교황의 피아노 연주로 인해, 점점 사라지기 시작한다. 이 부분을 좋아한다. 보수적이고, 냉철한 교황이 피아노 연주를 시작하자 행복해한다. 교황도 사람이고, 인간적인 갈등과 개인적인 선호가 없을 수 없다. 교황은 추기경과 대화하면서, 자신의 이야기를 한다. 자신의 이야기를 하며, 좋아하는 피아노곡을 연주하며, 음악에 대한 애정을 표현한다. 그리고 추기경도 자신의 이야기를 한다. 자신의 과거를 이야기하며, 자신이 종교인을 선택하게 된 과정에 관해 이야기한다. 사직을 표하려고 왔지만, 어쩐지 계속 거절당한다. 교황이 젊었을 때는, 신의 뜻대로 살 수 있었다. 신의 음성이 그를 인도하고, 성직자로 이끌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에게 신의 뜻이 다가오지 않는다. 추기경이 젊었을 때는, 자기 뜻대로 살 수 있었다. 신의 음성이 들리지 않았고, 평범한 직장인으로 살았다. 그를 성직자로 이끈 것은 우연히 들른 성당에서였고, 끝을 바라보고 있는 신부의 첫 번째 고해성사로 인한 것이었다. 그 신부는 신에게 고해성사하는 사람이 한 사람만이라도 있었으면 좋겠다고 기도했고, 신은 응답했다. 그 길로 추기경은 성직자의 길로 들어섰다. 정치적인 사건으로 인하여, 고향에서 그는 양면적인 평가를 받는다. 변절자와 인도자가 바로 그 평가의 내용이다. 그의 선택으로 인하여 주변의 지인들과 종교인들이 많은 고통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에게 신의 뜻은 그런 것들이 아니었다. 언제나, 항상 주의 종들을 좋은 곳으로 이끌어 가주시는 주님에 대한 기대에 가득 차 있었을 것이다. 이 사건이 있은 뒤로, 그는 신 아래에 있는 우리는 모두 평등하고 함께 살아가는 존재임을 깨달았다. 그가 진정한 종교인이 된 것은 신의 뜻보다 제 뜻이 더 컸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교황과 이 성직자가 보인 차이점은, 신의 뜻에 맹종하고 자기 삶에 대한 뜻과 의지를 믿지 못한 외로운 한 사람과 자기 삶에서 신의 뜻을 발견하고 실천하고자 했던 한 사람에 대한 것이다. 관련이 없어 보이지만, 한때 교과서에서 배웠던 원효대사와 의천 대사가 생각났다. 한쪽은 교리를, 한쪽은 대중을 위한 불교를 추구했던 사람들 말이다.

영화 <두 교황>

3. 종교란 무엇이 될 수 있을까

결국 종교는 실천이다. 그 실천이란, 인간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의지 표현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가지고 있는 의지는 인간적이고, 대담하기도 하다. 외로운 성직자가 아닌, 대중들에게 다가가는 주의 종을 자처한다. 신의 뜻대로 사는 것도, 나의 삶을 사는 것도 결국은 본인의 선택이다. 그 선택을 내리는 순간, 어떤 과정을 내가 겪을지는 그 아무도 모른다. 그래서, 신의 뜻을 많은 이들이 갈구한다. 달관하고, 초월한 듯 보이는 사람들의 내면도 모두 자신에게 일어난 일들을 받아들이기 위함이다. 그 어떤 것보다도, 인간의 의지와 태도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영화를 보면서 종교가 가지고 있는 의미에 대해 생각해 본다. 자신이 믿는 종교의 신이 나에게 뜻한 바는 무엇인지, 나는 그 뜻을 이루기 위해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나는 신의 뜻을 그저 기다리면서 나에게 신이 다가오지 않음을 원망하고 있지는 않은지에 대해서 말이다. 현재 나에게 종교는 없지만, 나에게도 던져야 할 질문이 아닐지 생각한다. 모든 사람의 마음속에 신이 있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신이 없는 사람들의  삶에 대한 의지와 선한 마음이 고갈된 채로 살아간다는 의미는 아니니까 희망을 가져본다.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프란치스코 교황이 우리에게 던진다. 비종교인들을 배척하는 것이 아니라, 종교인들과 비종교인들이 가져야 할 삶의 의미에 관해 이야기한다. 그들 사이에 다리를 만들어 놓음으로써, 우리가 지녀야 할 뜻에 관해 이야기한다. 그 이야기가 설득되는 이유는, 우리가 필요했던 것이 추상적이고 말하지 않았지만 살아감에 있어서 필요한 말이어서 그렇지 않았을까 생각을 해본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