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눈에 보이는 것을 믿는 사람들
하늘을 올려다보지 말 것, 그리고 현실을 마주할 것. 사실은 위험하지만, 눈에 보이는 것은 흥미롭다. 사람들은 보고 싶은 것을 보고, 봐야 하는 건 뒤로 미루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보고 싶은 것은 위험하고, 실제적인 현실이 아니다. 정치인, 언론인, 과학자들까지 그 믿음을 이용한다. 잔혹한 현실 앞에서 희망을 얘기하는 건 쉽다. 그 희망을 팔고, 농락하는 것은 더 간단해 보인다. 정치인들은 선거를 생각하고, 이미지를 생각한다. 지구에 닥칠 위기를 재해석한다. 그들은 위기를 기회로 만드는 능력은 탁월하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으면 오히려 위기다. 이야기가 사라지고, 갈등이 사라지는 시대를 원하지 않는 것일 수도 있다. 갈등과 어려움을 무찌르고, 극복하는 영웅은 나 자신이어야 하니까 그러하다. 이러한 모습에서 이상한 데자뷔를 느꼈다. 논리도, 해결책도 없이 말과 말로만 주고받는 전쟁은 지구에 떨어질 혜성보다도 더 빠르게 지구를 위협하는 중이다.
2. 믿고 싶은 것을 믿는 사람들
선한 의지를 가진 사람의 말은 너무나 당연하고, 재미없다. 그 당연함과 재미없음이 대중으로부터 외면당한다. 사람들은 그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곧 다가올, 눈앞에 보이지 않는 위협보다는 오히려 핸드폰 화면 속의 왈가왈부하는 의견 논쟁이 더 흥미롭다. 대중들은 여전히 화려하고, 자극적이고, 선동적인 메시지를 추종한다. 믿음의 주체가 본인 스스로인 경우는 거의 없다. 목소리가 큰 사람, 비논리적임 속에서 논리를 펴는 사람, 좌파 또는 우파 정치인,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과 만남을 반복 중인 연예인 등등이 각자의 생각을 빠르고 많은 양으로 쏟아낸다. 급격하게 밀려오는 밀물 속에서 만약 나라면 중심을 지키고 있을 수 있었을지 생각하기도 했다. 결론적으로 어렵지 않게, 나 또한 휘말리고 있었을 것이라 답을 내렸다. 영화 속 세상은 무너지고 있는 중이지만, 내가 살고 있는 세상도 일치하는 부분이 많았으니까 말이다.
사람들이 진실을 알게 된 것은 실제로 유성이 눈에 보였을 때이다. 텔레비전과 핸드폰의 화면에 나오는 이미지와 소리를 믿었던 사람들이, 드디어 모니터에서 멀어져 하늘을 쳐다본다. 믿고 싶은 것을 믿느라, 사실을 사실대로 받아들일 시간이 없었던 인간들이 드디어 하늘을 쳐다본다. 어떤 이들은 그마저도 하늘을 쳐다보지 않았다면, 누군가로부터 속임을 당한지도 모르고 최후를 맞이했을 것이다.
랜들과 케이트의 말을, 그제야 자각한다. 랜들과 케이트는 모니터에서 들리는 매력적이고 재밌는 이야기가 자신들을 진실로부터 멀어지게 만들었음을 깨닫는다. 극단적이지만, 진실을 외면한 대가는 컸다. 어떤 이들은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있을 시간을, 소중한 이들을 꼭 안아줄 시간을 빼앗겼다. 항상 우리가 작은 모니터를 쳐다보느라 잃어버리는 것들을, 영영 잃어버리게 되었다.
3. 불편하고, 위험한 말을 들어야 하는 이유
지구 멸망 스토리 중에 가장 하이퍼 리얼리즘인 영화였다. 이미지들을 요란하게 늘여놓고, 자극적이고 화려하며 매력적인 목소리를 가진 언론인들, 과학적인 사실을 믿어달라며 엄중하게 경고하는 지식인들을 조롱하는 모습이 낯선 모습이 아니었다. 그 '낯설지 않음'이 멀지 않은 미래의 한 모습이 될 거라는 상상을 하게 되니 무서웠다. 선거를 위해 사실을 외면하는 대통령, 중요하지 않은 이슈를 전달하는 언론인들에게 나 또한 그들의 화려한 언변과 쇼에 매혹되었다. 과학자인 케이트와 랜들의 말을 당황스러울 정도로 재미가 없었다. 시답잖은 가벼운 이야기들 속에서, 진실에 어떠한 태도를 갖추어야 하는지 생각해 보게 만들었다.
망해버린 지구로부터 탈출한 2천 명의 사람들은 지구에 남아 소중한 사람들과 한 끼 식사를 하는 사람들보다 어쩌면 더 가여워 보였다. 멍청한 사람들이 탄 우주선에서는, 그 어떤 곳에 터전을 잡더라도 어리석은 선택을 반복하며 살아갈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더 초라했다. 나체였고, 아무것도 가지지 않았다. 그들은 그대로 자멸할 것이다. 눈에 보기 좋은 알록달록한 행성에 착륙했지만, 결국엔 그들도 멸종하고 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