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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소희, 조금만 더 버티면 어른이 될 수 있을까.

by easyant 2024. 6.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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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다음 소희>

1. 누군가가 나에게 꿈이 뭐냐고 묻는다면

 고등학생 소희는 춤을 좋아한다. 그리고 씩씩하고, 밝은 아이다. 어른들은 말한다. 너희 때가 가장 예쁘고, 아름다우니까 어른처럼 꾸미지 말고 자연스럽게 있으라고. 어른들이 모르는 게 있다. 어른들은 그렇게 말하면서, 아이들을 어른과 같이 대한다. 순수하고 때 묻지 말라 하면서, 번잡하고 때 묻은 일을 시킨다. 아픈 만큼 성장하는 법이라고 속이면서.

 졸업 전, 소희는 현장실습을 나간다. 사무직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부모님의 용돈 대신 자신이 돈을 벌어 보탬이 되고 싶기도 하다. 아이들은 부모의 표정을 보고 자란다. 삶에 지치고 허덕이는 어른들을 볼 때면, 철부지 아이는 어른의 표정을 따라 짓는다. 춤과 관련된 직업을 꿈꾸던 아이는 꿈이 사무직 여직원이 된다. 더 정확하게는 '정규직' 사무직 여직원이다. 

 열심히 하면, 최선을 다하면 못 이룰 것이 없다. 어른들은 또 이렇게 아이들을 속인다. 열심과 최선은 군말 없이, 묵묵하게, 성실하게, 그리고 참으면서 자신을 갉아먹도록 만든다. 성과가 올라갈수록, 취업률이 높아질수록 더 나아지는 건 내가 아니라 그들이다. 


2. 얼굴에 미소 대신 울분이 덕지덕지

 콜센터는 한정된 공간에서 서로의 목소리가 부딪치며, 때로는 고성이 오가는 현장이다. 몇몇 고객들의 언어폭력에 무방비로 노출된다. 하지만, 다른 출구가 없다. 말꼬리를 붙들고 설득하고, 실적을 올려야 한다. 실적이 떨어지면, 누군가는 화가 나고 잘못에 대한 책임은 오롯이 일하는 사람의 몫이다. 

 소희에게 처음 일을 알려준 사람은 회사에 울분을 스스로 견디지 못해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그 모습을 처음 본 사람은 소희다. 작은 몸부림이었다. 사람 대우를 하지 않는 곳에서, 죽음으로써 대우를 받기 원한다는 건 모순이다. 담당자가 교체된다. 그리고 억울하고 분노에 가득 찬 죽음이 아닌, 개인의 일탈로 인한 회사의 손해로 사건은 마무리된다. 

 소희는 그 이후로 일에 미친 사람처럼 보란 듯이 성과를 올린다. 일이 재밌어서가 아니라, 이렇게라도 미쳐있어야 다른 것을 잊고 살아갈 수 있다는 사람처럼 행동한다. 일하는 기계. 자기 자신을 버리고 속을 썩이면서까지 일을 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 일이 힘들거나, 스스로 너무 힘들다면 그곳에서 빠져나오라고 하는 이가 없다. 친구들의 위로와 조언은 그저 치기 어린 투정처럼 보인다. 


영화 <다음 소희>

3. 등 떠밀어 도착한 곳은

 형사 유진은 소희의 죽음을 뒤따라간다. 소희가 일했던 곳, 다녔던 학교, 부모님과 함께 살았던 집, 마지막으로 찾아간 장소들도 전부. 친구들은 소희의 죽음을 막지 못해 슬퍼한다. 어른들은, 부모마저도 소희의 죽음에 책임을 지려 하지 않는 것 같다. 학교에서는 취업률을, 회사에서는 성과를, 공공기관에서는 책임 회피를 내세운다. 그저 운이 지지리도 나쁜 상황이었다. 다른 사람들은 안 그러는데, 유독 그 애만 그렇게 유난을 떨며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으로 포장했다. 

 유진은 한 번도 만난 적이 없지만, 소희의 흔적을 뒤쫓으며 소희를 찾아낸다. 춤을 좋아하는 열여덟 살 소희에서 어른의 어두운 얼굴을 닮아가는 소희를. 유진은 소희가 아마도 될 수 있었던 어른이었을 것이다. 부당한 일에 화를 내고, 좋은 일에는 웃기도 하고, 상처받은 사람을 더 들여다보는 어른이 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이 아이의 뒷모습에서 맨발이 얼마나 시렸을지, 얼마나 추웠을지, 얼마나 아팠을지 생각해 본다. 스스로 발걸음이 향한 곳은 집이 아니었다. 파도에 휩쓸리듯이, 거센 바람에 휘몰리듯이 그렇게 마지막 공간에 들어왔다. 모든 고통이 끝나기를 바라며. 

 아무것도 해결된 것이 없고, 아무도 사과하지 않았다. 소희가 일했던 곳은 다른 사람이 채워질 것이다. 그렇게 다음, 또 다음이 생기게 될 것이다. 아이들은 어른이 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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