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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나를 해고하지 않는다, 당신은 나를 해고하더라도

by easyant 2024. 3.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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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나는 나를 해고하지 않는다>

1. 열심히만 하면 될 줄 알았던 

성실과 노력으로 성공하지 못하는 사람은 인생의 실패자이다. 게으름과 나태는 병이다. 돈이 돈을 벌어야 하기 때문에, 적은 돈을 받고 속된 말로 무식하게 일하는 사람에게는 미래가 없다. 미래는 우리를 기다려 주지 않는다. 다양한 수입원으로 소득을 얻는 파이프라인, 젊을 때 고생하고 악착같이 모아 이른 나이에 은퇴하는 파이어족이라는 단어가 나타난 뒤로 근로라는 행위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열풍이 일었던 적이 있다. 불확실하고 불평등한 시대에 국가나 사회는 나를 지켜주지 않으니, 내 능력으로 살아남아야 한다는 생존본능이 슬프게 발현된 것이다. 조용한 퇴사라는 단어가 등장하기도 했다. 직장에서 열심히 일을 하는 것은 나 자신을 소진시키는 일이며, 이곳에서는 자기 계발이 이루어지지 않으니 소극적으로 시키는 일만 하는 새로운 직장인이 등장했다. 열심히 하면 나에게 보답이 돌아오는 게 아니라, 일을 더 하게 된다는 우스갯소리도 있다. 나의 가치를 인정해 주지 않는 사회에서 나의 시간과 나의 발전은 스스로 해야 한다. 비가시적인 나의 일상은 측정할 수 있는 정량적인 지표로 남기기 위해 노력한다. 나의 직장에서 벗어나고 싶지만, 수입원이 끊기는 것은 더 무서운 일이다. 그래서 조용히, 악착같이 살아남으려 한다. 

 

2. 홀로 높은 곳까지 올라가는 것보다 더 무서운 것은 

송전탑의 수리를 하는 하청업체의 직원 중 막내라는 사람은 이렇게 말한다. 죽음보다, 해고가 무서운 거라고. 대리님은 죽음이 무서운 거냐고 말이다. 박 대리는 이렇게 말한다. 해고와 죽음은 다르지 않다고 말이다. 원청에서 쫓겨난 박 대리는 저 멀리 하청업체에 들어온다. 말이 좋아 파견근무인 거지, 원청은 1년만 버티라 세련된 해고 통보를 했다. 그 말을 믿은 박 대리는 그 1년을 버티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고소공포증을 극복하기 위해 병원에 다니고, 쉬는 날에도 공부를 하고, 사수인 막내로부터 교육을 받는다. 이것은 타인의 이야기이다. 내가 무시해 왔던 이야기이다. 그 이야기 안에서 어떤 인물들은 고통을 겪지만, 인내하고 감수한다. 마치 그 고통의 이유를 알지만 근본적인 원인은 본인에게 있다는 듯이 참아낸다. 막내는 죽는다. 박 대리는 그의 장례식장에서 원청에 있는 동기에게 전화를 받는다. 근무평가가 가장 나빴던 그 사람만 제치면 언니가 1년 버티기에 유리하다는 말이었다. 바코드가 달린 하나의 상품처럼, 바코드가 찍히면서 가격을 공유하고, 그렇게 팔려나가는 상품이 되어간다. 자신에게 바코드를 단 그 사람들에게 화를 내기보다는, 같은 바코드를 단 사람들에게 눈길을 준다. 당신이 나의 경쟁자냐고, 당신은 상품가치가 없으니 이곳에서 떠나라고 암묵적인 메시지를 공유한다. 장례식장을 나서며 해고 통보를 받은 박 대리는 송전탑에 오른다. 전기가 끊겼으니, 송전탑을 수리해야 한다는 이유였다. 그렇게 일을 하러 갔고, 거친 바람에 외줄을 타다가 떨어지지만, 안전띠가 있어서 다시 외줄을 타러 올라갈 수 있다. 죽음도, 해고도 두렵지 않은 눈빛이었다. 마침내 꼭대기에 올라가 수리를 하고, 건너편 마을에 전기가 들어온 것을 보는 장면으로 영화는 끝이 난다. 땅에 발을 붙이고 사는 일보다 더 무서운 건, 높은 송전탑에 올라가는 일이 아니었다. 송전탑마저 올라가지 못하게 될 까봐, 해고당할까 봐 두려운 마음이었다. 

영화 <나는 나를 해고하지 않는다>

3. 비정규직으로 이 땅에서 살아남는다는 것은

흔들리는 눈빛에서 절대로 물러나지 않음을 보여주는 부분이 인상 깊었다. 불길하고, 불쾌한 말들이 오고 가도 속으로 삼켜내 버리는 현실의 씁쓸함을 영화에서 보면 더 분노가 치민다. 당하는 입장에서 아마도 누군가는 지었을 표정을 스크린 안에서의 표정으로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저것이 끝이 아니라는 것과 여기서 포기해 버리면 나는 약한 사람이 되어버리고 만다는 것이 마음을 더 아프게 만든다. 막내는 자신의 죽음을 목격한 사람들의 시선보다는 오히려 일을 하지 못해 자신의 딸들을 지킬 수 없다는 사실에 슬퍼했을 것이다. 오르기 어려운 송전탑을 딸들을 생각하며 오른 막내는 아마도 그랬을 것이다. 자신이 처한 현실을 타도하고, 더 나은 현실을 꿈꾸는 것조차 힘겨운 인생이었을 것이다. 그 무시무시한 현실마저 무너진다면, 괴롭더라도 돈을 벌 수 있는 그 세상이 무너진다면, 아마도 그것이 더 견딜 수 없었을 것이다. 새로운 세상에 대한 개혁을 쉽게 말하지만, 구 시대적인 시대가 무너지면 더 이상 발붙일 공간이 없는 사람들도 있다. 효율성을 외치지만, 효율은 언제나 약하고 느린 이들을 무시하고 지나가기 때문에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다. 효율성이 있는 곳에는 모욕을 주는 사람과 수치심을 느끼는 사람이 존재한다. 그 간격 사이에 방관하는 사람은 바로 관객 자기 자신이 아닌가 하는 질문을 남긴다. 그저 모욕을 주는 사람의 권력과 지위를 부러워하고, 수치심을 받는 사람을 동정하며 안타까워한다. 그 간격에서 스스로는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수치심을 받는 사람이 아닌 것에 감사하고 있다. 내가 그 상황에 처해 있지도 않으면서 그렇게 함부로, 함부로 그렇게 느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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