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한없이 멀어지거나, 한없이 가까워지거나.
극한은 수학에서 하나의 양이 정해져 있는 값에 점점 가까지 도달하는 것을 의미하고 있다. 도달하고자 하는 점은 가까워지지만, 완전히 도달할 수는 없다는 점이 특징이다. 완전히 도달할 수는 없는 지점이기에 사람은 도달하려 하고, 극복하려 하고, 이겨내려고 한다. 일반 명사인 직업과 같이 사용할 경우, 일반인들이 상상할 수 없는 경지의 힘들거나, 고된 일을 하는 직업을 말하기도 한다. 사람들 대부분은 적은 노력으로 많은 수익을 내길 원한다. 노동의 가치가 폄하되는 이 시대에서, 극한 직업의 노동자들은 무엇을 위해 이 일을 하는지 궁금하다. 직업에서의 의미가 돈이라면, 사명감과 행복이라는 가치는 그 값이 곤두박질칠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 가치는 곧 자기 자신의 가치로 매겨진다. 내가 추구하고 싶었던 것과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과의 괴리는 말할 필요도 없이 불행하다고 느낄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 일은 다르다. 어떤 일은 하고 싶은 일이 아니더라도, 착실히 해나가면 그 일에 푹 빠져들 수도 있다. 유명한 이들의 인터뷰에서처럼, 생계를 위해 이 직업을 선택하고 유지했으나 어쩌다 보니 여기까지 왔다는 말처럼 말이다. 시작은 미약하더라도, 계속하는 힘이 더해진다면 어떤 지점까지 완벽에 가까운 경지에 오를 수도 있는 것이다.
2. 나만 힘들게 산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나라를 위해 범죄를 소탕하고, 그 과정에서 내 몸을 던져 그렇게 노력해도 월급은 충분하지 않다. 어느 정도까지 여야 충분일 수 있겠나 싶지만, 스스로를 희생한 대가의 결과는 승진과 실적에 점수가 매겨지는 성과표로 계산이 되고 만다. 심지어 수사를 위해 위장으로 창업한 치킨집이 승승장구하게 되면서, 위장은 점점 본업의 경계를 넘어서게 된다. 돈이 인격과 매너의 원천이라는 우스갯소리가 있듯이, 본업에서 위축되기만 하던 고 반장은 가족들에게 당당한 가장의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큰 사건으로 팀의 해체를 막기 위해 위장을 시작했지만, 이 위장 창업은 결국 결정적인 기회를 잡는 데 도움을 준다. 자영업자에서 형사로 돌변하는 그 순간은 마치 높이뛰기 선수들이 발구름판의 탄력을 받아 크로스 바를 넘어서는 모습이 연상되기도 한다. 모른 척하면, 모르는 새에 이익을 얻게 될 가능성이 높다. 고생했으니, 이 정도 대가를 바라는 것은 욕심이 아니라는 기만이 찾아오기도 한다. 사실 내가 힘들 건, 나의 의견이고 착각이다. 잘 되고 싶고, 인정받고 싶은 욕심은 나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기에 그렇다. 결국 치열한 격투 끝에 살아남은 건, 고 반장이다. 형사로서 그에게 남아있는 건 사실 특별한 격투 기술이 아니라 치열한 생존력이다. 그 생존력을 바탕으로, 각자의 일에 최선을 다하는 이들을 우습게 보는 이들을 해치워버린다. 그 모습이 결코 하찮을 이유가 없다.
3. 결국에는 버틴 사람이 이기는 법.
이 영화의 흥행의 원인은 전형적인 한국 영화의 공식을 깨는 장면들 때문이다. 초반에 웃음이 있는 장면을 넣고, 후반부에 신파극으로 몰아가는 장면이 없어서 오히려 신선한 느낌이었다. 억지로 형사의 사명감이라는 교훈을 넣으려고 하지도 않았고, 형사들 간 정치싸움과 같은 소모적인 부분도 없어서 담백한 코미디극을 본다는 느낌이었다. 아는 맛이 무섭다는 말은 음식뿐만 아니라 다양한 문화 코드에서도 사용된다. 아는 맛을 식상하지 않게, 새롭게 보여줄 수 있을지 대중들은 기대한다. 여러 가지 다양한 정보들로 인해, 한 가지에 집중하고 버티기가 어려운 시대에 살고 있다. '버팀'은 성실함과 강단이기도 하지만, 고집과 집착일 수도 있다. 성공 공식을 따라가면, 어느 정도까지 성공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이후에는 자신만의 스타일이 필요하다. 그 스타일을 만들기 위해 오랜 시간이 걸리는 법이지만, 그 노력에 따르는 시간을 알아줄 사람들은 많지 않다. 그래도, 고 반장처럼 그의 팀원들처럼 어떻게든 살아남아본다면 결과는 달라질 것이다. 쉽게 일하고, 쉽게 성공하는 세상에서 내가 아는 열심히 사는 사람의 성공을 본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영화였다.